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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이건 ‘미담’이 아니다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09 19:20:1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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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돈을 갚았다.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날로부터 꼬박 1년이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친구에게 그 돈은 꽤 큰 금액이었다.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나에게 연락을 했을 때는 아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당장의 하루를 살아가는 게 급급했을 텐데도, 그는 돈이 생길 때마다 꾸준히 나에게 송금을 해왔다. 그사이 취업이 확정되어 한 달에 일정한 금액을 차례로 변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1년 동안 그는 빌렸던 돈을 모두 상환했다. 누군가는 빌렸으면 갚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채무에 대한 흉흉한 ‘괴담’만 떠도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는 분명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청년세대의 부채 문제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국내 가계대출 잔액은 약 1755조8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30대 이하 채무자가 26.2%를 차지하고 있다. 1년 전보다 1%포인트 증가한 수치이며, 모든 연령대 중 유일하게 다중채무자 비중이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가 논란이 됐다. 24살 이하 신용평점 20% 이하 저신용 청년의 이자를 최대 50%까지 감면해주는 정책 구상안은 ‘개인의 투자 실패로 인한 피해를 변제해주는 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현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다 보니 발표 자료에 투자 손실 얘기가 들어갔다”는 금융위원회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분노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채무 이행이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자금 대출이든, 전월세 대출이든, 신용카드 사용내역이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빚을 지고 있고 또 성실히 갚아가고 있다. 하지만 얼핏 당연해 보이는 그 행위가, 정말 모두에게 당연한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면 우리 사회에는 논쟁 속에서조차 언급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의 수혜를 받는 저신용자도, 변제의 의무를 지닌 채무자도 아닌, 금융기관에서 공식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누가 어디서 돈을 빌리느냐에 따라 채무는 괴담이 된다. 흔히 ‘사채’라고 불리는 불법금융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 ‘내구제 대출’ 사기 등 범죄에 연류되어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곁에 그저 ‘좋은 친구’가 있기를 바라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빌려준 돈의 절반을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후원하자는 뜻을 전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개인적 사건을 사회적 문제 제기로 확장해보고 싶었다. 함께 후원처를 찾던 중, 2013년부터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자조기금을 조성해 소액대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연대은행토닥’(토닥)의 존재를 알게 됐다. 토닥은 조합원들에게 소득증빙과 신용등급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청한 청년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만 고려해 대출을 심사했다. 10년이라는 활동 기간 토닥이 맡았던 생활안전망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더 논의한 후 누군가의 일상을 지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토닥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이야기가 ‘미담’으로 소비되기를 원치 않는다.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악화되는 금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은행 중심의 금융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를 지키는 ‘사회보험’으로서의 금융 개념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여전히 채무자 개개인에게, 민간단체에게, ‘좋은 친구’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책임을 전가한다면, 훗날 우리는 더욱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채무에 대한 흉흉한 괴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태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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