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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지옥’에서 ‘노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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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2-09-12 19:07:2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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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천사가 나타나 죽음의 시간을 고지한다. 시간에 맞추어 어김없이 나타나 죽음을 시연하는 사자(使者)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다. 이걸 ‘신의 의도’라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천재지변적 사고에 의한 죽음을 ‘신의 심판’으로 해석하며, 인간은 더 정의로워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은 그의 말과 뜻은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이자 기준이 된다.

기준은 ‘맞고 틀림’을 빚어낸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그럼에도 다름은 틀림이 된다. 기준에 매몰된 사람들이 다름을 틀림으로 밀어붙여서다. 다름을 포용하지 않는 절대기준은 시나브로 폭력으로 작동한다. 스스로는 살인까지 저지르면서도 ‘너희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강변하는 괴물들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세상을 지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얘기다.

정의를 독점한 사이비종교 집단 ‘새진리회’는 세상 위에 군림한다. 하부 연계 조직인 ‘화살촉’의 무자비한 테러와 폭력을 발판 삼아서다. 나와 다르면 가차 없이 시뻘건 낙인을 찍는다. 광신은 확신이 되고, 광기는 용기가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다. 거칠 것 없는 괴물들의 폭주다. 드라마 ‘지옥’은 신이 심판하는 불바다의 지옥이 아니었다. 자기만의 기준을 정의와 진리라 주장하며 나와 다른 생각에 철퇴를 휘두르는 세상, 그게 진짜 ‘지옥’이었다.

작위(作爲) 말고 무위(無爲). 드라마 ‘지옥’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혁신 화두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일 분 일 초 바뀐다.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거다. 변화는 변수가 아니다. 상수다. 그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세상을 자꾸 나의 틀 속에 가두려는 이유다. 틀에 갇힌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이다. 내가 보려 하는 세상이다. 무위가 아니라 작위다. 알량한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춘들 천변만화하는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일 리 없다. 어깃장이 날 수밖에.

드라마 속 ‘새진리회’ 역시 스스로 꾸며낸 작위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봐야 하는 대로 본다. 견강부회다. 다른 의견과 다른 생각? 용서할 수 없는 악(惡)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성이 지배하니 세상은 숨 막히는 공포로 가득하다. 끔찍하고 섬찟한 폭력사회다.

맹신(盲信) 말고 생각. 드라마 ‘지옥’에서 읽어내는 두 번째 혁신 화두다. 요컨대, 합리적 이성의 회복이다.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할 때가 있다. 해가 달에 가려지는 현상. 일식이다. 일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연적 현상일 뿐이다. 과거엔 아니었다. 일식은 신의 계시였다. 그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이 선지자였고, 지도자였다. 무지와 몽매의 세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 덕분이었다. 천명으로부터의 독립이었고, 미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생각은 합리적 이성 회복의 중요한 도구다. 질문은 생각의 씨앗이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합리적인지, 이성적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광신과 맹신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상황을 입체적·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대다. 확신만큼 위험한 게 없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변화를 유연하게 포용할 수 있다.

드라마 ‘지옥’ 속 사람들은 ‘무위’하지 않는다. 협소한 믿음에 사로잡혀 얄팍한 흑백논리로 세상을 재단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타인의 해석을 주워섬기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할 종교가 종교를 위한 종교로, 급기야 범죄집단의 천박한 도구로 전락한다. 작위와 맹신이 빚어낸 지옥도다.

노자는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은, 외부로부터의 정답과 기준을 경계한다. 치열한 질문과 생각의 과정을 통해 나의 정답과 나의 기준을 만들라 역설한다. 전체나 집단이 아닌, 개인과 나에게 방점을 찍으라 일갈한다. 나로 살아 건강한 개인들이 함께 만드는 자유와 창의 충만한 사회, 노자가 꿈꾸었던 이상사회다. 책 ‘사장을 위한 노자’의 저자여서일까? 드라마 ‘지옥’에서 ‘노자’를 보았다. 그리고 ‘혁신’을 읽는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사장을 위한 노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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