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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가기 /한일용

  •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   입력 : 2021-06-14 19:59:1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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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폐암이었다. 병기는 3기를 넘었지만, 아직 수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폐 깊숙히 자리잡은 종괴를 최대한 절제해내고, 추가적으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환자는 수술을 거부했다. 혹시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치료비 때문일까? 조심스레 다시 권유해본다.

   
“아니요, 선생님. 수술은 무섭지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환자의 밝은 미소에 질문을 던진 의사가 오히려 무안하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처음에는 자신의 병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회계사가 직업인 환자는 수술후 5년 생존율, 관해율 등 생소한 의학용어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바짝 다가온 ‘죽음’을 실감하고서야 자신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았다고 한다. 치료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그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수술과 항암치료로 이어지는 투병생활로 보내고 싶지 않고,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 크루즈 여행을 예약했다. 다소 의외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랫동안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했다고… . 암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그와 가족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밝은 미소로 자신의 병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일까? 암에 대응하는 의학적인 치료방법만이 최선의 선택이고, 그 과정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의사는 그의 결정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질병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백혈병 에이즈 치매 파킨슨씨병을 비롯해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흔한 만성질환자들이 그러하다. 이런 질병은 완치라는 개념보다는 조절과 관리가 요구된다. 완전히 치유되기 어려운 질병을 어르고 달래서 여생을 함께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회적 완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보고가 여럿 들린다. 바이러스는 그 구조가 단순하여 쉽게 변이를 일으킨다. 최근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베트남 등에서 연이어 변이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다. 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는 감염력, 치명률이 얼마나 증가할 것이며, 변이가 일어나기 이전의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만든 백신이 변이형에도 여전히 억제효과를 보일지 걱정이다. 백신을 맞고 난 뒤에도 감염이 되는 ‘돌파 감염’도 그런 이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마치 감기(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어쩌면 우리 주변을 오랫동안 계속 맴돌지 모르겠다. 지난 2년 동안 바이러스의 완치를 바라며 백신에 기대를 걸었던 우리에겐 참으로 실망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다. 마스크를 벗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기회는 과연 없는 것일까?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과거 에이즈(AIDS)가 처음 발병했을 때는 그 치료제가 없어 ‘신의 천형(天刑)’이라고 불렸다. 한때 광우병 공포를 일으켰던 크로이츠펠트 야콥병도 마찬가지다. 이들 질병은 지금은 결핵, 한센병 등과 함께 ‘제3군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간헐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어 계속 그 발생을 감시하고 방역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질병군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일상을 바꾸어 놓았고, 때로 뜻밖의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간단한 예를 생각해 보자. 회식이 어려운 사람들은 배달 주문을 선호하게 되고,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배달 오토바이는 새벽까지 쉴 새없이 움직인다. 오토바이의 배달 동선에 있는 가정들은 문제다. 더워지는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기 힘들 정도로 소음에 시달린다.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교통사고도 걱정이다.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삶 속에서 배달을 시키는 사람도, 겨우 매출을 이어나가는 자영업자도, 배달을 하는 사람도, 주변 이웃들도, 모두가 힘들다. 주문배달이라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은 이곳저곳에서 갈등의 ‘태풍’으로 변할 수 있다.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않도록 바뀐 규칙과 예절을 지키고 배려해야 한다. 암과 더불어 살기로 한 환자는 바뀐 환경에 놓인 가족들,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슬기롭게 찾을 것이다. 타인에게 전염력이 없는 만성질병과 더불어 살아가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나의 감염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야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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