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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미국이 졌다’는 이 느낌은 뭐지? /조봉권

미 대선 진흙탕 싸움 일관, 비전도 방향도 제시 못해

세계인 시선도 걱정·허탈…한국, 정신 바짝 차릴 시간

  • 국제신문
  •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0-11-05 19:28:2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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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바이든이 붙었는데, 미국이 진 느낌이다. 지난 3일 시행된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대급 혼전과 난타전, 구설 속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쪽으로 일단 기울어가는 양상이다. ‘일단’이라는 단서를 일단 둔 것은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이 제기하는 강력한 결과 불복 공세와 소송의 진행 양상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미국 포스트 대선 대혼란’을 당연한 순서로 예상한다.

‘천조국(天朝國)을 검색하면 “인터넷상에서 미국을 이르는 말이다”고 명쾌하게 나온다. 옛날 같으면 명나라(중국)를 지칭했을 텐데, 지금은 미국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최강대국, 초강대국, 슈퍼파워를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이른바 천조국의 대선이라면 뭔가 다르든지, 뭐라도 특별한 게 있든지 해야 할 텐데, 이번엔 그게 안 보였다. 트럼프 진영이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진흙탕 개싸움‘이 선거판을 지배했다.

‘맹자’를 읽으면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유명한 대목을 만난다. 양혜왕이 맹자를 초빙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맹자는 답한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오로지 어짊과 올바름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 대목을 ‘맹자는 이로움을 버리고 올바름을 택하라고 했다’고 풀면서 이로움과 올바름을 서로 대립하고 배척하는 반대 개념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는 아직 꽤 있다. 나는 그런 취지의 해석에 반대한다. 그렇게 풀면, ‘맹자’는 일그러지고 꽉 막힌 도덕적 형이상학으로 빠진다. 누군가 관리에게 뇌물을 건넨다. 이로움(利)을 생각하면 받으면 된다. 올바름(義)을 생각하면 받으면 안 된다. 이로움을 중시해 뇌물을 받은 사람은 그게 버릇이 되고 욕심이 커져 결국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간다. 의로움을 소중히 여겨 뇌물을 안 받은 사람은 그런 마음을 유지하며 줄곧 자기를 돌아보고 역량을 길러 꿈을 이루고 자긍심을 키운다.

이때 뇌물을 받지 않은 올바름은 이로움과 반대되는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올바름은 더 크고 근본적인 이로움으로 이어졌다. 올바름과 이로움은 연결돼 있다. 개인의 일도 이럴 수 있는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는 큰 과업은 어떻겠는가. 맹자는 ‘어질고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본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런 어짊과 올바름을 오늘 말로 바꾸면, 대의명분, 시대정신, 공동체를 위한 담대한 구상, 보편적 가치 등이다.

역사의 ‘임상사례’가 풍부한 중국의 전쟁사를 보면 큰 전쟁의 필수품이 대의명분이다. 상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엎을 때,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엎을 때 모두 대의명분을 치켜세워 ‘의로운 군대’임을 강조했다. 칼로만 싸운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선점하려 했다.

그러니 오늘의 ‘천조국’ 미국의 대선에서 시대정신이나 인류의 보편 가치를 위한 치열한 공방 같은 뭔가 ‘근사한’, 또는 ‘미국다운’게 조금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게 뭐가 이상한가? 게다가 미국 대선은 온 세계가 지켜본다. 세계 각국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세계는 미국 대선을 통해 미국의 무게를 재고, 흡수할 것은 흡수한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이번 대선전은 이걸 아예 깨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 계산하고 여러모로 궁리해, 안정된 승리 가능성이 안 보일 경우 선거판을 진흙탕 개싸움처럼 몰고 가려고 기획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고 요란한 정책을 펴고, 중국을 때리며 이익을 얻고, 감각적이되 품위는 고려하지 않는 발언을 시원하게 쏟아내 대리만족을 준 점도 미국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선거전 양상을 살피고 포스트 대선 정국을 예상할 때, 바이든과 트럼프가 싸우고 미국이 졌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싸움판 자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판 자체를 흔들고 깨는 트럼프 진영의 재주는 대단하지만, 비전도 방향도 알 수 없고 국민 사이의 감정 골은 더 깊게 패이게 한 결과 앞에서 미국이 눈앞의 이익을 주워 담으면서 내리막 또는 추락의 입구로 접어드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그렇게 외치더니, 그 펀치가 미국 뒤통수부터 치는 형국이다.

한국은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으로 접어든다. “600여 년 역사를 돌아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대륙이나 해양에서 ‘힘의 교체’가 생기면 한반도에는 어김없이 위기가 다가온다. 그 위기는 백발백중 전쟁이었다”(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지적이 잊히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 전쟁을 지속하면 파란이 일 것이다. 그때 위기와 기회가 함께 올 것이다. 부디 이념 외교를 버리고 실리 외교를 지혜롭고 과감하게 펼쳐 포스트 미 대선 국면을 한국의 국운 상승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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