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안역(바닷가의 육지)의 자연재해 예방이 시급한 과제로 불거졌다.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의 연쇄 타격을 받으면서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주요 공단별 거점기업 70여 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안역에 위치한 업체의 태풍 피해가 특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도구의 조선소들은 대부분 방파제를 넘어온 산더미 같은 파도에 건물이 부서지거나 물에 잠겼다. 기장군에서도 다수 업체가 건물과 제품이 파손되는 난리를 겪었다. 연안역이란 입지 취약점이 공통요인이다.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의 연안역은 138.9㎢로, 전체 면적의 약 18%에 달한다. 연안역에 있는 기업은 8만4000여 개로, 이들의 지역총생산액은 시 전체의 약 34%를 차지한다. 지역경제의 3분의 1이 태풍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국립해양조사원의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100년 빈도의 해일고(해일 때 해수면의 높이)가 발생할 경우, 영도구와 중·서구 연안역은 최고 1.5ｍ까지 침수될 수 있다. 기장군 고리원전과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등에도 최고 1~1.2ｍ의 해일고가 예상된다. 부산신항 녹산산단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등 서부산 지역의 해일고는 최고 3ｍ로, 사정이 훨씬 심각하다. 녹산산단에선 2003년 태풍 매미 당시 160개 업체가 침수되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연안역의 침수 위험은 더 커졌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해수면 상승폭은 연간 3.05㎜로, 동·서해안(2.97㎜)을 웃돈다. 해양조사원이 예측한 남한 침수 면적(2100년까지 4149.3㎢) 중 부산의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위기가 착착 가시화되고 있는데도 당국의 대응은 거북이걸음이다. “방파제 추가 설치 등 대책을 수년 전부터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등 하소연을 하는 태풍 피해 업체가 적잖다. 중·장기 침수 대책 마련은커녕 이미 발생한 재해의 재발 방지책조차 못 세우고 있으니 한심하다. 죽은 뒤 약 처방하는 부질없는 노릇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