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카 비극’을 영화화한 조지 스티븐슨 감독의 명작 ‘젊은이의 양지’(1951)를 보았다. 흔한 아침드라마의 전형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후반부에는 고전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미투 운동부터 n번방까지 혐오범죄를 대하는 대중의 반응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불편함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범죄자를 인간 이하, 사회적 쓰레기로 여기며 암세포처럼 도려내고자 하는 경향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온갖 상을 휩쓴 이 영화가 지금 세상에 개봉한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오래전 읽은 책 하나를 떠올렸다.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는 어떤 그룹과 행위에 관한 혐오 감정이 법 제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미국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선과 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누스바움이 논리로 가장한 채 혐오를 조장하고 거기 편승하는 방식의 정치가 아닌 인류애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애의 정치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는 ‘존중’을 바탕으로 상대가 되어보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것이 가해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낭만적인 용서를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반응 중 혐오가 가장 쉽다. 시쳇말로 그 부분을 ‘극혐’하고 잘라내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이미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알듯 그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문제의 재발을 막고자 한다면, 우리는 혐오 대신 극한의 인류애를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악질의 범죄 앞에서조차 존중과 상상력을 발휘해볼 것.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법도 정치도 아닌 예술이라고 마사 누스바움은 말하고 있다.

“예술은 그렇게 혐오와 싸워나간다.” 그러나 과연 지금 우리의 예술이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데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분노를 표출하고 다른 쪽은 쉽게 적으로 돌리며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분노와 혐오 감정이야말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최적의 자원이기에 자본주의 속 많은 대중예술이 이런 길을 택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러한 경향은 어느 진영의 예술이든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그렇게 혐오 속에 함몰되어 간다.

‘젊은이의 양지’는 혐오와 인류애의 미묘함을 잘 보여준다. 조지(몽고메리 클리프트 분)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연인 앨리스(쉘리 윈터스 분)가 있지만, 안젤라(엘리자베스 테일러 분)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자기 처지를 숨긴 채 안젤라와 위태로운 만남을 이어가던 조지는 자꾸만 걸림돌이 되는 앨리스를 죽이고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가 살인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포기한 순간, 아이러니한 세상은 두 사람이 타고 있던 배를 전복시키고, 앨리스는 결국 죽게 된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 끝에 자신의 연인을 구하지 않은 조지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분노 앞에서도 잘못을 알지 못하고 힘겨워한다. 안젤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앨리스를 구하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그의 영혼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연인을 죽인 범죄자로 세상의 힐난을 받으며 감옥에 있는 조지를 안젤라는 마지막으로 찾아간다. 안젤라는 (지금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뜻밖의 말을 건넨다. “사랑해요. 조지. 당신이 그걸 알았으면 해요.…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영원히.”

그 순간, 조지와 안젤라 사이에서 세상의 혐오정치는 인류애의 정치로 역전된다. 안젤라의 사랑은 얼어붙었던 조지의 마음에 존중과 상상력의 감각을 되돌려준다. 무한한 사랑 앞에 속죄하는 한 인간의 모습, 너무 나이브한가?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현실주의자의 혐오보다는 이상주의자의 인류애가 더 낫다.

“지금 많은 걸 깨달았어요. (내게 죄가 있다는) 사람들 말이 맞나봐요.…내가 살아 있을 동안만 사랑해줘요. 그 이후엔 잊어요.” 그렇게 한 인간은 사형대로 걸어 나간다.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