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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깻잎무침 두 장 컵라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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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3-04 19:31:2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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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최남단에서 70㎞ 정도 떨어진 야쿠시마라는 섬에는 수령 7000년이 넘는다고 알려진 삼나무가 있다. 세월의 무게에 걸맞게 나무는 인간 발길이 닿기 힘든 깊은 산중에 뿌리내리고 있다. 왕복 10시간쯤의 긴 여정. 시간보다 더 큰 문제는 비. 야쿠시마는 신이 하루를 더 허락해도 비가 온다는, 그래서 1년 366일 비가 내린다는 섬이다.
일본 규슈의 섬 야쿠시마에 있는 7000년 된 삼나무.
새벽 어스름을 뚫고 걸음을 재촉했다. 폭우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 빗속을 걸은 지 꼬박 5시간.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 속에서도 배고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 솔직함 또한 경이로웠다. 삼삼오오 모여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었다. 주먹밥에 몇 가지 반찬. 몸은 젖고 밥은 식어 있었다. 그나마 쑤셔넣어야 몸이 버틸 것 같았다.

먹는 즐거움 따위는 사치라 생각되던 찰나. 물기 머금은 공기를 타고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일행 한 명이 깻잎무침 통조림을 딴 것이다. 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관심은 일제히 깻잎으로 향했다. 통조림 주인은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이였다. 깻잎무침이 두 장씩 배급됐다. 생존을 위해 쑤셔넣던 밥에 생기가 돌았다. 깻잎무침 두 장 덕분에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끼니였다.

길을 나선 지 6시간 만에 7000년을 살아온 삼나무 앞에서 섰다. 시간의 흔적은 크기가 아닌 표정에서 드러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척박한 곳에서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생물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종일 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었다. 그쳤던 비는 폭우로 변했다.

출발지점까지 한 시간쯤 남았을 때 오한과 함께 손끝 발끝이 저려왔다. 9시간 꼬박 비를 맞으니 몸에 한계가 왔다. 어떻게든 출발지점까지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 순간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컵라면 하나만 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은 온통 컵라면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함께 걷던 가이드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무사히 도착했다. 히터를 틀어 놓은 버스에 앉으니 안도감과 함께 컵라면을 향한 욕망이 더 강해졌다. 7000년 된 삼나무의 감동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숙소로 향하던 버스가 멈췄다. 인구 1만3000명 남짓한 외딴 섬 슈퍼마켓에 매울 신(辛) 자가 선명히 박힌 한국산 컵라면이 있었다. 그 컵라면은 내 생에 가장 극적인 음식이 되었다. 결국, 7000년 된 삼나무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의지하는 욕망’은 식욕이라는 교훈으로 끝났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불안과 공포다. 바이러스보다 전염 속도도 빠르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식욕은 어김없이 꿈틀거린다. 식욕에 굴복하는 건 부끄러움이 아니고 생존의 의지다. 규칙적으로 잘 먹어야 면역력도 생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식욕을 마음껏 드러낼 때다. 어지간한 불안과 공포도 식욕은 못 이긴다. 절대!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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