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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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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로레슬링 역사를 거론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수가 장영철이다. 김일, 천규덕 등과 함께 1960~1970년대 프로레슬링 중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김일이 귀국하기 앞서 우리나라에 프로레슬링을 처음 선보인 1세대 선수로 알려져 있다. 물론 기량도 출중했지만 장영철이 더 유명해진 계기는 1960년대 중반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정해져 있는 경기”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고부터다.

   
항간에서는 장영철이 이런 말을 한 이후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는 게 스포츠계의 분석이다. 프로레슬링은 장영철의 발언이 나오고 나서도 1970년대 후반까지 변함 없이 인기를 누렸다. 따라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몰락은 야구 등 새로운 프로스포츠의 등장에 더 큰 이유가 있다고 바라봐야 옳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프로레슬링 경기장에 여전히 많은 관객이 모인다. 여기에는 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가 추진하는 고도의 상업전략이 숨어 있다. WWE는 ‘프로레슬링이 일종의 쇼’라는 점을 아예 전제로 깔고 각종 오락적인 요소를 첨가한다. 예컨대 특정 선수는 정의의 편, 상대 선수는 악의 편이라고 성격을 규정한 뒤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쪽으로 결말을 내는 식이다. 이웃인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선수들의 기상천외한 볼거리로 미국 못지 않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담도암으로 투병하다 최근 세상을 떠난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는 미국 WWE의 이런 체계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김일 체육관 1기생이기도 한 그는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꿈꾸며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링에 올랐다. 생전에 이 대표는 또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라 어떤 격투기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는 종목이라며 관객들의 냉담한 시선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대표의 타계로 마지막 구심점이 사라진 우리나라 프로레슬링계는 더욱 어려운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스포츠를 통해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기 바라는 팬들의 요구가 더 거세지는 터여서 프로레슬링이 다시 살아나기는 힘든 것은 사실. 볼거리가 변변찮았던 시절, 동네에 몇 대 안되는 흑백TV 앞으로 어른과 아이들을 불러 모았던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추억으로 묻어둘 수밖에 없게 됐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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