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학교도 문 닫아야 해요.”
엊그제 산행 중에 최모 원장이 학교 폐기론을 폈다. 참담한 학교폭력 때문이다. 그는 나름 잘나가는 입시학원 경영주다. 입시 위주로만 치닫는 학교가 학원과 다를 게 뭐냐는 게 그의 논리다. 학생이 잠자는 교실보다 뭐라도 받아쓰게 하는 학원이 낫다고 했다.

거침없는 그의 말에 내심 불편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구구절절 옳은 것을. 학교를 비판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적어도 나는 30년 전 초임교사 시절부터 이런 얘길 내 성찰의 채찍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쓴소리가 줄기는커녕 갈수록 더 독해지고 있다. 스승과 제자는 간데없고, 교사와 학생만 남았다는 얘긴 기본이다. 이젠 ‘빛도 안 나는 졸업장’을 팔고 사는 시장이란 얘기. 심지어 ‘학교야말로 청소년 폭력의 온상’이란 얘기까지. 정말이지 누구 말대로 이러려고 대학교수가 된 건지 자괴감이 든다.

그날 내 반박은 이랬다. “어디 학교만의 잘못인가. 그동안 ‘무한경쟁과 지식사회만을 외쳐왔던’ 국가사회도, ‘자녀교육비 버느라 정작 애들을 방임했던’ 가정도 정신 차려야 한다.” 옆에 있던 김모 교장이 냉큼 덧붙였다. “학교는 참 억울하다. 불과 반세기 전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이 나라를 이만큼 올려놓은 게 학교 교육인데….” 그걸 잊고 학교를 이토록 공격하는 건 토사구팽이라 했다. 공감한다. 한편으론 국·영·수와 기술혁신만을 외치며 질주하다 보니 애들이 다치는 걸 모른 것도 사실이다. 하늘의 별을 따려 버둥대다 발밑의 꽃을 짓밟은 격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학교는 요즘 그 존재 이유인 ‘3육’에 실패했다. 으뜸이 돼야 할 덕육은 늘 구호에 그친다. 이걸 가르치기에 학교는 이제 무기력해져 버렸다. 체육에서도 아이들이 놀고 쉬거나, 친구랑 경쟁하며 공격성만 키울 뿐. 그들의 체력저하와 비만·발병률이 해마다 심각해져도 어쩌질 못한다.

왕년에 국가발전에 한몫했다는 지육도 위태롭다. 애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정작 사회인이 됐을 때 별 쓸모가 없다는 게 유엔과 미래학자들의 경고다. 그런 공부를 하며 애들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집단지성을 갖기는커녕, 서열과 차별 속에서 늘 아프다. 세계 경제 10위 국이면 무얼 하고, IT 최강국이면 또 무얼 하는가. 학생·교사·학부모는 물론 우리 사회까지 불행해졌거늘.

언젠가 청소년 숲 체험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강연하고 참관하며 2박3일을 지냈다. 그 짧은 기간에 모두 많이 달라졌다. 이름 모를 꽃과 풀을 다듬으며 생명사랑(biophilia)을 배운 아이들. 친구랑 깔깔대며 뛰놀던 아이들. 흙과 솔방울을 살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운 아이들. 칼럼을 쓰는 지금도 그때 만난 한 아이의 짠한 모습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편백을 부둥켜안고 한동안 훌쩍훌쩍 울던 그 아이. 까닭을 묻진 않았다. 다만, 숲이 그 아이의 마음을 치유해줬음을 안다. 그날 숲은 그 애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3육을 일깨워줬던 훌륭한 스승이자, 따뜻한 엄마였다.

3육 중 체육을 생각하면 숲은 가장 매력적인 환경이다.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시간당 소모 열량이 500㎉나 된다. 또 피톤치드가 듬뿍 담긴 맑은 공기와 짙게 뿜어내는 음이온은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루소, 페스탈로치, 프뢰벨 등 많은 교육자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습은 자연환경에서 신체놀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이유다. 운동장에서 애들을 경쟁시킬 시간에 그 땅에 나무 한 그루라도 심는 게 낫다.

학교폐기론에 어찌 동의하랴. 그러나 지금의 학교라면 아이들을 차라리 숲으로 보내라. 숲이 학교일 순 없다. 그러나 학교가 거듭나고, 또 아프고 지친 그 애들을 치유하는 행복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터.

부산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