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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활은 ‘화살을 쏘아 보내기’ 위해 있다

부모가 자식을 떼어놔야 정신적 성숙 기회 갖게 돼

영혼의 거처 마련해주며 서로에게서 자유 보장받길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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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10-26 18:40:2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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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수험생들에겐 이 아름다운 한반도의 가을을 즐길 짬도 없다. 수험생들은 벌써 지난 8월 초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수능 100일제’를 지내며 지독한 다짐을 했다. 각종 매체에서 ‘최고 성적 팁’을 준다며 외쳐대는 “수능형 인간이 돼라!”는 ‘비인간적’ 구호에도 이미 중독이 되었다. 몇 년 전 수능을 앞둔 고3 여고생들이 팝송을 편곡하고 가사를 붙인 노래가 다시금 귓전을 때린다. “그대여 오늘도 날 비추나요 / 힘들고 지쳐버린 날 / 그대는 내 맘 아는지… / 내 삶의 마지막 하늘을 놓치지 마!”
   
그렇다고 지금 이 시기에 수험생들만 애태우고 땀 흘리는 건 아니다. 학부모들이 자식의 대입 수능 준비에 자기 삶을 온통 저당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일상도 ‘수능 시계’에 맞춰서 계획되고 실천되고 있다. 그들도 수능형 인간이 되고 있다. 이는 더 큰 문제이다. 이제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매년 반복되는 이런 삶이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삶인가? 수능형 인간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물론 교육제도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적, 그리고 가정적인 문제들이 모두 엉켜 있다. 지금 중고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 대에서는 별다른 개선책이 나오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하는 또는 앞으로 아이를 갖게 될 젊은 부부들이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를 그 심층에서 의식하고 합리적으로 삶을 조정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의 문제 그 저변에는 가정에서의 인간관계와 가정교육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가정교육은 모든 교육의 바탕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자식을 교육하는 차원도 있지만, 부모가 스스로 자신을 교육하는 차원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 칸트도 교육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하는 사람 역시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이 당연함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자식이 성장하는 매 단계 달라져야 하므로 더욱 까다로운 점이 있다. 현대 교육학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부모-자식 관계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품어 안기’이고, 둘째는 ‘한계 짓기’이며, 셋째는 ‘떼어놓기’이다. 대부분 첫째와 둘째 단계는 잘 해낸다. 아이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당연히 품어 안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에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설정함으로써 한계를 지어준다. 그러나 세 번째 가장 중요한 단계인 ‘떼어놓기’ 또는 ‘놓아주기’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가정적인 요인이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부 관계는 이른바 권태기에 접어든다. 자식이 틴에이저가 되면, 곧 사춘기 후기쯤 되면 부부는 서로 소원해지기 쉽다. 이것이 부모 특히 어머니가 자식에게 집착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부부가 다시금 애정을 갖고 마주 앉게 되면, 자식은 상대적으로 ‘혼자’가 된다. 바로 이때 자식은 성숙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 관계의 호전과 성장해 가는 자식의 자립은 밀접하며 서로 비례 관계에 있다.
그러면 ‘놓아주어야’ 할 시기는 언제인가. 앞서 말한 사춘기 후기가 적당하다. 요즘 세대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고등학교 1학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부모들은 사춘기에는 자식이 신체적으로 부쩍 크고 성적으로 어른이 되는데 정신적으로는 미숙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두뇌의 발달과 정신적 성숙 역시 사춘기 중 이루어진다. 즉 ‘자기 생각’이 생기는 시기가 사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생각에 반발하는 것이지, 정신적으로 미숙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자식은 막연하나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학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전공 분야로 진로를 잡을 것인지 하는 결정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자녀가 단독으로 결정하게 놓아두라는 말도 아니다. ‘함께’ 상의하고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놓아주기는 결국 자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자 부모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이제 자식과 부모는 친구 사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부모는 성인이 된 자식도 양육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이 일정한 성장기를 지나면 서로를 위해 ‘양육으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것은 고령 사회를 비롯한 21세기의 사회·문화적 변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인간 공동체는 부모든 자식이든 점점 더 개인의 자립과 책임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 문화의 무대에는 틀에 박힌 학교 공부나 학력이 아니라 창의성을 요구하는 다양한 전문 분야가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는 ‘떠나보내는’ 데에 있다. 이것은 학교 교육이든 가정교육이든 마찬가지다. 스승이 제자를 졸업시키듯이, 부모는 자식을 졸업시켜야 한다. 자식 교육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자식을 떠나보내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를 위한 칼릴 지브란의 잠언은 다시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체의 거처를 마련해줄 수 있지만 영혼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수는 없다.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쓸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하지 말라. 생명이란 뒤로 가지도 어제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활, 살아 있는 화살 같은 아이들을 쏘아 보내는 활이다.”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는 것은 화살을 꼭 붙잡고 있기 위함이 아니다. 화살을 멀리 빠르게 쏘아 보내기 위함이다. 부모는 활이고 자식은 생명의 화살로서 찬란한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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