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Lucifer)’는 사탄이나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천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에게도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그 때문에 자만했나 보다. 루시퍼는 지옥으로 추방당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루시퍼를 지옥의 지배자로 묘사했다. 라틴어로 루시퍼는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 즉 금성을 뜻하며 ‘빛을 옮기는 자’란 의미라니 그야말로 반전이다.

루시퍼가 1820년대 영국에서 나온 성냥 이름으로 쓰였다는 점이 공교롭다. 1827년 의사에서 화학자로 전향한 존 워커는 실용적인 성냥을 처음 만들었다. 이 마찰성냥은 오늘날 쓰이는 성냥의 기원으로 꼽힌다. 정작 이를 돈벌이에 활용한 사람은 그의 친구로, 그가 특허를 받고 루시퍼란 이름을 붙여 팔았다.

그런데 루시퍼는 여러 화학재료를 섞어 만들다 보니 불꽃이 일정하지 않고 냄새도 고약했다. 성냥갑에 ‘되도록 가스를 마시지 마세요. 폐가 약한 사람은 루시퍼를 쓰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을 붙일 정도다. ‘루시퍼 성냥’은 빛을 옮기는 자란 이미지 아래 사탄이 될 수도 있다는 복선을 깔았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루시퍼 등장 이후 성냥은 인(P)을 발화연소제로 사용하는 제조법이 고안되면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황린을 이용한 마찰성냥에 이어 인체에 해가 없는 적린성냥을 거쳐 1848년 자연발화 위험이 없는 안전성냥이 나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성냥하면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리지만, 성냥 하나로 세계 3대 부호가 된 ‘성냥왕’ 이바르 크뤼게르를 빼놓을 수 없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세계 성냥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했으나 대공황 여파로 몰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연기처럼 사라진 셈이다.

우리나라에 성냥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개화승 이동인이다. 그는 1880년 9월 수신사 김홍집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할 때 성냥을 가져왔다. 성냥 대중화는 1910년대 일본인들이 부산과 인천 등지에 성냥공장을 지으면서 비로소 가능했다. 그 뒤를 이어 기린표·유엔·향로·아리랑·비사표 성냥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 마지막, 기린표 성냥을 만들던 경남 김해시 경남산업공사가 이달 말 문을 닫을 예정이란다. 1948년 설립된 이 성냥공장을 끝으로 대한민국 성냥 제조사가 막을 내린다. 아날로그 세대의 종언을 알리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