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 한 달 뒤인 2011년 4월 12일 국회 본회의장. "장관, 우리나라 원전 안전합니까?" 당시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물었다. "예,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력생산을 책임진 주무장관답게 확신에 찬 답변이었다. 질문이 이어진다. "앞으로 서울에 원전을 지을 계획 있습니까?" 순간 장관 얼굴엔 뜨악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현재까지 건설 중인 것과 앞으로 입지 후보 중에는 없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의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 사람들이 전기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서울에 원전을 지어라는 주장.
이제야 의도를 파악한 장관은 서울 원전 절대 불가론을 편다. "지질학적 요인과 사회적인 문제"에다 냉각수 핑계를 들이댄다. 원전을 식힐 바닷물이 풍부한 해안가가 적합지라는 얘기다. 그러자 의원이 발끈한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에 원전이 5개 있습니다." 내륙인 서울도 한강 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면 된다는 말이다. 원전 식히는 데 필요한 물은 초당 50t. 한강 하류 수량으로 감당이 충분하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그래도 장관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원자력법에 의한 입지 선정에서 수도권은 다른 데에 비해 좀 부적합한 것으로…." 논리가 궁핍하니 법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결국 의원 목소리가 호통으로 바뀐다. "지방이 봉입니까? 지방 사람들은 원자력 직접 피해를 입어도 상관 없고 서울이나 수도권은 안 됩니까?"
새삼 6년 전 기억이 떠오른 건 영화 '판도라' 때문이었다. 원전이 폭발하자 대통령은 인근 주민 소개령을 내리려고 한다. 그런데 실세 총리가 제동을 건다. 수도권 등 다수 국민 안전과 사회혼란 방지가 더 급선무라는 것이다. 영화 속 스토리이긴 하나, "지방이 봉이냐?"는 의문이 절로 오버랩된다. '판도라'는 원전의 불편한 진실을 재조명했다. 450만 명 관객 수 못지않게 반응도 뜨거웠다. 개봉 직전 터진 경주 지진도 한몫했다. 원전 안전 논란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지자 관심도, 우려도 눈 녹듯 사라졌다. 중앙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유력 대선주자의 '문제적' 영화 소감도 묻혀버렸다.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은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다. (그런데 실제 사고) 참상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느낀 충격은 정말 큰 듯했다. 그래서 에너지의 원자력 의존 폐기, 즉 '탈핵(脫核)'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판도라'는 문 전 대표가 '탈핵' 교재로 거론하기에는 급(級)이 한참 맞지 않는 픽션일 뿐이다."(조선일보 2017년 1월 9일 자) 그러나 정당도, 대선주자들도 별 관심을 내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정치적 대립각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한 발 더 나가 구체적 탈핵 일정을 밝혔다. "우선 원전의 추가 건설을 중지하고, 설계수명이 완료된 원전부터 차례로 문을 닫아가야 한다. 그러면 국내 원전이 끝나는 시점이 2060년 정도 되는데, (그때까지) 40여 년 안에 대체에너지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펴낸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였다.
이번에는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도 잠잠하다. 에너지 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선언에 대한 반응치곤 놀라울 정도다. 그것도 지지율 1위 대권 잠재후보가 던진 이슈 아닌가. 이해되는 측면이 없진 않다. 문재인의 탈핵 선언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2012년 대선 때도 탈핵을 공약한 바 있다. 당시도 아무런 임팩트가 없었다. "원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정치적인 용도로만 이용하려 한다면 큰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동아일보 2016년 12월 21일 자) 정치권도 대충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대선에서도 원전 문제를 그냥 흘려보낼 순 없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에서 압도적 세계 1위. 절대다수 주민이 원전 반경 30㎞ 이내에 사는 부산 경남 울산은 더욱 절박한 심정일 게다. 그렇다고 무조건 탈핵을 찬성하자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원전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지진 단층대 대비책, 임시수조에 방치된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 추가 원전 건설 문제 등. 모든 대선주자에게 해법을 당당히 따져야 한다. 누가 더 합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는지부터 살펴보자. 이념, 연고 등을 따지기 이전에 원전 해법을 우선적 선택기준으로 설정해보자. 그래야 서울의 '봉'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삶이, 대한민국이, 후손들이 안전할 수 있다.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