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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기본소득보다 복지국가가 먼저다

선진국보다 복지수준 낮은 우리, 기본소득 필요한가

사회보험 확립·보육 등 양질의 서비스 확충 더 시급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1-26 18:55:3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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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됐다. 매달 모든 성인에게 약 300만 원, 아동에게는 약 75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76.9%가 반대해서 부결됐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이재명 시장이 2800만 명에게 연간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후 기본소득은 대선 국면의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이 제도의 '정확한 의미'가 아니라 '막연한 의미'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행복 수준이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OECD 주요 선진국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복지국가다. 이들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설된 복지국가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복지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들을 갖추고 있다. 먼저 소득 보장을 위해 사회보험과 사회수당 제도를 운용하는데, 이것으로도 기초생계비가 부족한 빈곤자에게는 공공부조 제도로 도와준다. 다음으로 사회서비스 보장을 위해 보육·교육·의료·요양 서비스를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한다.

복지국가는 성인이면 누구라도 일을 통해 소득을 얻도록 하는데, 일을 할 수 없어 소득 단절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4대 사회보험 제도를 운용한다. 산업재해로 일할 수 없는 경우의 소득 단절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이 작동한다. 회사의 폐업이나 해고의 경우는 고용보험이다. 질병으로 일하지 못해 소득이 단절된 경우는 질병보험이 작동한다. 노령과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의 경우는 국민연금을 적용한다. 또 복지국가는 애초에 근로소득을 얻기 어려운 특정 인구를 대상으로 조세 기반의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를 운용한다.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학생수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복지국가 체제가 과학기술의 진보와 노동시장의 변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 있다는 이유로 서구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등장했다. 기본소득은 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 현금을 지급하는 보편주의 제도인데, 기본소득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자산조사 없이 개인 단위로 균등하게 현금을 지급한다. 둘째, 노동 여부와 노동 의사를 묻지 않고 지급하되 그 액수는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를 가능케 할 정도(최저생계비 이상)라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아직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스위스 국민투표의 기본소득 방안만이 정확하게 이 제도의 본질에 부합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우리 사회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 사회에서 서비스 경제 중심의 탈산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고 일자리의 불안정성과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므로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로는 탈산업 사회의 일자리와 소득 보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주요 정당들은 이런 전제를 거부했으며, 선진국들은 여전히 복지국가 체제를 견지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복지국가의 제도적 발전이 크게 미약하고 탈산업화의 수준도 낮은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주장이 대선 국면을 맞아 이렇게 부상하는 게 옳은가.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에는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이 있고 여기에 농어민수당이 추가된다. 금액은 매달 약 8만3000원으로 최저생계비인 62만 원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이 시장의 기본소득은 성인을 대상으로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생계 보장이 가능할 만큼의 금액을 보편적으로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핵심 개념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농어민을 제외하면 그의 기본소득은 모두 복지국가 제도인 사회수당에 해당한다. 아동수당은 우리나라, 미국, 멕시코, 터키를 제외한 OECD 국가들에 다 있는 사회수당이다. 장애인수당과 노인수당(기초연금)은 우리나라도 있다. 주요 선진국에는 학생수당 형태의 청년수당도 있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복지국가 제도인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같은 사회수당에 '부분기본소득'이란 신조어를 붙였다. 이것은 옳지 않다. 복지국가 체제를 넘어설 기본소득의 핵심을 들고나와 논쟁을 벌이는 게 정공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은 GDP의 10.4%로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넓고 소득대체율이 매우 낮다. 게다가 질병보험(상병수당)은 아예 없다. 보편주의 원칙에 맞게 선진국 수준으로 사회보험을 내실화해야 한다. 아동수당과 취업 연계형의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211만 원)의 15%인 32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

이런 개혁 조치들은 초보적 복지국가인 우리나라가 유럽 수준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것이며, 기본소득과 무관하다. 나는 복지국가 체제가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시장 재편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복지국가의 제도적 확립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맞게 복지국가의 소득 보장 제도인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을 확립·강화해야 한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누구나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간병인 등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현금 복지보다 사회서비스의 확충이 더 시급한 이유다. 결국 지금의 시대정신은 먼 훗날 필요할지 모를 기본소득이 아니라 이미 성과가 검증된 복지국가의 건설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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