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장! 우리 집 새해 아침 풍경이다. 모자에 마스크, 장갑까지 갖추고 집을 나선다. 차는 타지 않는다. 해맞이를 위해 가까운 야산으로 도보행군이다. 원래는 새벽같이 차를 타고 큰 산으로 갔었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더 좋은 포인트에서 해를 보려는 욕심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조금 괜찮다 싶은 산이면 주차전쟁부터 치러야 했다. 때로는 싫은 소리도 오가게 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해를 보려다 소소한 일로 기분을 망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에 치이고 시비의 우려를 안고 가느니 가까운 야산으로 가자. 그렇게 바꾼 야산 해맞이가 10년을 넘었다.
우리 동네 야산 해맞이는 소박하다. 사람이 슬슬 늘고 있지만 가는 길에 서넛 보는 게 고작이다. 여기서라면 느슨하고 여유롭게 해를 맞을 수 있다. 큰 산보다는 해가 살짝 늦게 뜨지만 상관없다. 1분 일찍 본다고 날마다 1분이 저축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인증샷이 매해 똑같다. 어떤 때는 옷까지 똑같아서 웃는 적도 있다. 이게 올해 사진인가, 저게 올해 사진인가? 나중에 살펴보면 그 또한 소소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해가 뜨면 다들 자신만의 소망을 비느라 바쁘다. 상당수는 3일도 못 가 사라질 결심들이니 소위 새해 단골인 작심삼일형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사흘에 걸쳐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하게 마음먹었지만 사흘만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좋다. 작심삼일도 매달하면 일 년에 36일이다. 매주하면 무려 150여 일이다. 금연으로 치면 줄어드는 담배가 얼마인가? 3일밖에 못 가는 결심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해맞이가 끝나면 첫 식사를 준비한다. 첫 식탁 차림은 내 몫이다. 첫날 우리 집 사모님께 잘 보여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내려는 속셈도 포함되어 있다. 한 해를 여는 식탁이니 조금 의미를 붙인다. 복도 받고 액운도 막으면 더할 나위 없으니 복국이나 동탯국이 맞춤하다.
복국이라면 복어? 그거 아무나 못 끓이잖아?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수산시장에 가면 다 손질해준다. 복을 첫째로 꼽는 건 맛도 맛이지만 어감이 우선이다. '복국'. 왠지 복(福)을 먹는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연말에 쌓인 술자리의 주독까지 쫘악 밀어내준다. 아침 등산까지 마치고 온 바이니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무엇에 비하랴? 복국이 여의치 않을 때는 동탯국도 나쁘지 않다. 동태는 명태를 말린 생선이다. 생선 중에 명태처럼 천변만화하는 것도 드물다. 동태 황태 북어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명태의 진가는 따로 있다. 그 휘둥그레한 눈에 잡귀와 액운을 쫓는 신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명주실 둘둘 감아 대문 문설주 위에 복 달라고 올려놓고, 개업한 가게나 새 차에 매달아 두 눈 부릅뜨고 액막이로 삼는 것이다.
동탯국은 그 맛이 칼칼하여 복국과는 반대편이다. 하지만 겨울철이 제맛이니 속을 개운하게 하는 건 복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김을 몇 장 집어내 들기름 살살 발라 두 번 구워놓으면 새 아침의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올해는 모처럼 '새' 해다. 닭띠 해이기 때문이다. 12간지 중에서 닭은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동물이다. 닭은 무슨 재주로 용을 제외한 육상동물들 무리에 끼게 되었을까? 빛을 부르는 상서로운 능력 때문으로 보인다. 닭은 귀신을 쫓고 복을 부른다. 밤에 활개 치던 잡귀와 맹수들도 새벽 첫닭이 울면 맥을 못 추고 사라지는 것이다.
보글거리는 복국의 수증기를 따라 상상이 날개를 편다. 그렇다면 닭처럼, 물고기 띠도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고기 띠가 생긴다면 어떤 물고기가 자리를 차지할까? 잉어띠? 갈치띠? 이것저것 생각해도 명태가 제격이다. 12간지에 당당하게 포진한 닭처럼 명태도 잡귀와 액운을 쫓는 신이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명태 띠가 생겨 두 눈 부라리며 감시하면 말과 행실이 다른 정치인들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을까?
혼자 헤벌쭉 웃고 있을 때 우리 집 사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국물 넘치잖아, 또 딴 생각했지?" 아, 대한민국 동화작가의 새해는 또 이렇게 시작이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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