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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빚의 나라

조선 상평통보 유통 후 날뛰는 대부업 못 막아 서민 몰락

빚 내서 집 구입 권하는 현실 '망국적 과거사' 반복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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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05-19 19:11:2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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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은 그 기원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가까운 조선시대를 예로 들자면, '경국대전' 형전(刑典) 금제(禁制) 조에 "사채를 멋대로 징수하는 자는 장(杖) 80대에 처한다"는 조문이 있다. 이런 조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조문의 '이자를 멋대로 징수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조문에 딸린 주석에 의하면, 매달 10%의 이자 혹은 1년에 50%의 이자를 받을 수 없으며, 이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것의 합이 원금을 넘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 원을 빌려줄 경우, 매달 10원의 이자를 받을 수 없으며, 1년에 50원의 이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시간이 흘러 이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 이자는 원금을 초과할 수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런 법조문이 있어도 대부업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대부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1678년(숙종 4년) 상평통보가 발행되고 나서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상평통보의 유통을 역사 발전의 한 징표로 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역사적 필연으로 보는 견해에 근거한 판단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도달할 필요도 없다!

어쨌든 상평통보는 물자의 유통에 대단히 편리한 것이었지만, 그 역기능도 엄청나게 컸다. 화폐의 유통은 사족과 지주, 부자들에게는 재산을 축적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지만, 역으로 대다수 백성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평통보가 발행되고 나서 17년 뒤인 1695년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은 화폐와 이자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장리(長利)는 반드시 돈으로 빌려준다. 봄에 돈 1냥에 쌀이 시세로 2두(斗)다. 가을이 되어 원금과 이자를 합쳐 1냥 50푼을 갚아야 하는데, 가을의 시세로는 쌀 7두 5승(升)이 된다. 쌀로 계산하면 결국 원금의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앞의 '경국대전'에서 50%의 이자를 받는 것이 장리로 보인다. 곧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50%의 이자를 붙여 받으면 1년에 150%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석정의 지적에 의하면, 가을에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을 때는 돈으로 받지 않고 쌀로 받는다. 결국 2두를 빌려주고 7.5두를 받으니, 원금의 3배 이상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유통의 편리를 위해 도입한 화폐가 이자를 엄청나게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상평통보가 사용되고부터 사채와 공채 모두 이자율이 급속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갑절의 이자란 뜻의 '갑리(甲利)'란 용어가 숙종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다. 1718년 우의정 이건명(李健命)은 갑리가 부자들이 부를 증식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갑리는 1년이 되지 않아 이자가 원금의 갑절이 되기에 갑리다. 곡식이 귀할 때 쌀 1두의 값은 1냥이다. 가을이 되면 갑절인 2냥을 받되 그것을 쌀로 환산해 받으면 1두의 쌀을 빌리고 5, 6두를 갚아야 한다(가을에는 쌀값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갑리는 1년 만에 원금의 5, 6배를 갚아야 하는 고리대 중의 고리대였던 것이다. 그 대책으로 이건명은 관청에서 대출하는 경우 10분의 1의 이자를, 민간 대출의 경우에 미곡은 10분의 5, 은과 돈과 포(布)는 10분의 2의 이자율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이건명의 지적은 앞서 1695년 최석정이 지적한 바와 내용상 동일하다. 다만 용어가 장리에서 갑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건명처럼 이자에 어떤 제한을 두자는 제안, 예컨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연한을 3년 이내로 하자는 법이 숙종 연간에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높은 이자율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1746년(영조 22년) '속대전'의 호전(戶典) '징채조(徵債條)'에 엄격한 법을 신설했다. 곧 공채와 사채를 막론하고 20% 이상의 이자를 받는 자는 장 80대에 도(徒) 2년에 처하고, 갑리를 받은 자는 장(杖) 100 대에 귀양을 보내도록 하며, 10년이 된 빚이라 하더라도 단지 1년의 이자만을 받을 것을 법으로 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초(國初)에는 돈을 사용하지 않아 사채의 폐단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그 법규가 조금 너그러워서 어긴 자에 대한 벌이 장(杖) 80대에 지나지 않았다. 숙종조 이래로 돈이 크게 유통되어 사채의 폐단이 날로 달로 증가되니 소민(小民)들의 몰락이 모두 이 사채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 법이 비로소 엄해져서 어기는 자는 죄가 도(徒) 2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화폐의 유통으로 인해 발달한 사채업이 보통의 백성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여러 국가기관에서도 민간의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국문 소설 '이춘풍전'의 주인공 이춘풍이 호조에서 빌린 장사 밑천을 평양 기생에게 탕진했던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가계 부채가 1200조라고 한다. 전셋값이 미친 듯이 오르니 하는 수 없이 은행 대출로 막는 수밖에 없다. 아니, 나라에서는 친절하게도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권했다. 빚이 있으니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 '소비절벽'이 오고 경기가 죽는다. 만약 빚을 내서 산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 이래 대한민국은 빚의 나라가 되고 국민 대부분은 빚쟁이가 되었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빚을 놓아 축재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국민 대부분을 빚쟁이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이 나라 정부와 정권이 벌인 일이다.

   
조선이 망할 때 백성 대부분은 빚쟁이, 가난뱅이가 되어 있었다. 나라가 남의 손에 넘어가 식민지가 되는 그날 대부분의 가난한 백성들은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 꼴을 앞으로 다시 보아야 하겠는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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