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부터 영국의 탄광에서는 카나리아를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카나리아는 이산화탄소에 민감한 새다. 새는 일반적으로 호흡과 대사속도가 빠르고 크기가 작아서 유독가스에 인간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이 때문에 광부들이 카나리아를 보고 닥쳐올 위험을 미리 감지한다. 카나리아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덕분에 많은 인간의 생명을 구했으리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기계가 카나리아를 대체하게 되었다.
시인을 가리켜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한다. 시인은 단어 하나를 정의하는 데에도 우는 매미만큼이나 치열하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살고, 세상에 나와 한 달 만에 죽는다. "용서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하여 치가 떨리고 노여운 것은, 상황 그 자체보다는 그 배후에 도사린 잘못된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릇됨을 응축하고 있는 자세. 그것을 볼 줄 알 때에 우리는 분노하며 운다." 김소연 시인이 말하는 '분노'의 정의 중 일부다. 사물이나 세상을 대할 때에도 시인은 유난히 예리한 촉을 사용한다.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면, 그들은 탄광의 카나리아같이 먼저 질식하기 십상이다.
고(故) 고현철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시인이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내던져 지키려한 국립대 총장 직선제는 1987년 민주화항쟁의 결과로 쟁취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직선제를 폐지시키기 시작했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를 지표로 넣은 것이다. 실제 2012년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지원한 국립대 가운데 탈락한 4개 대학의 공통점은 직선제 폐지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4개 대학은 직선제를 폐지하기로 학칙을 개정한다.
2011년 교육부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개정했다. 직선제로 선출해오던 단과대학 학장을 총장이 임명하도록 바꾼 것이다. 대학의 최소 단위는 학과다. 학과 의견이 단과대학별로 모이면, 이를 단과대학 학장들이 학장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 대학 의사결정의 큰 틀이다. 이제 학장을 총장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으니 총장만 되면 대학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총장 간선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간선제로 총장 후보 2인을 뽑은 경북대는 교육부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명을 미루고 있다. 후보자를 재추천하라는데, 이는 선거를 다시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코드가 맞는 인사가 아니면 임명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011년 부산대 총장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당선된 1~3위 후보자 모두가 부정선거로 약식기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결국 선거 결과는 무효화되었다. 재선거가 치러졌고, 직선제 사수를 공약으로 내건 김기섭 교수가 총장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김 총장은 자신의 공약을 뒤집고 직선제를 폐지하였고, 이에 반발한 교수들이 210일간 총장실을 점거한다. 2014년 12월 치러진 교수투표에서는 83.9%가 직선제를 지지한 바 있다. 결국 김 총장은 올 8월 4일 직권으로 간선제를 결정했고, 교수회장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고현철 교수가 목숨을 던진 것은 총장직선제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유서는 이렇게 끝맺는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질 것이다."
총장 직선제에도 장단점이 존재한다. 문제는 간선제를 추진하는 방식이 비민주적이다 못해 강압적이었다는 것이다. 교육공무원법 24조 3항에 따르면 '해당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총장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무기삼아 대학들이 합법적(?)으로 직선제를 포기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다. 김소연 시인의 '분노'의 정의에서 보듯이 '그 배후에 도사린 잘못된 태도'가 교수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고(故) 고현철 시인은 대학, 아니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였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광부들은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그 많은 비민주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졌거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카나리아가 죽었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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