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통신)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하나의 지구'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북반구와 남반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빈부 차이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 속에 기아와 빈곤문제가 범지구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2000년 9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 빈곤 타파 선언이 이뤄졌는데, 이것이 '유엔새천년개발목표'이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 아래 각국 정부, 국제사회, NGO(비정부기구), 국제기구 등은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최빈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도약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국제개발협력의 성공사례이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원조활동의 핵심적인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 비율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12년 국민총소득 대비 0.15% 수준인 것을 내년까지 0.25%까지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DAC 회원국 평균인 0.46%에는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국제개발협력이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원조, 수출신용, 민간투자 등 다양한 협력방식을 통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구호단체나 원조기관 등으로 인식되어온 국제개발협력 NGO가 하는 일은 개발원조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국제개발협력을 전공과목으로 개설하는 대학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필자는 최근 국제개발협력 NGO 대표로서 캄보디아 오지 지역과 인도네시아 메라피화산을 방문했다.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 속에서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해 여러 곳을 다녀야 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놀이터 제작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총 열두 곳에서 완성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캄보디아 시골학교 운동장은 허름한 정원이나 꽃밭으로 가꾸어져 있거나 잡초로 방치돼 있는 곳이 많다. 아이들이 달리기나 축구 같은 구기종목을 즐기며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구호단체에서 지어주는 놀이터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메라피화산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이다. 2년 전 찾았을 때는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여 울창한 수목들이 모조리 사라진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2010년 10월 화산폭발로 350명 이상이 숨지고 30여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낸 바 있다. 2주 전부터 다시 가스가 분출하는 등 화산활동 조짐을 보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경보 단계를 높였다. 이런 위험한 지역에 산 중턱까지 마을이 형성돼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여기서 살아왔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아왔던 곳이고 나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정부에서는 계속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하지만 우리는 갈 곳이 없어요. 여기가 고향이니까요." 산기슭에서 만난 주민 쌀림 씨를 통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2011년 11월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발원조 관련 국제회의가 열렸다.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로 스포츠에 비유하면 하계올림픽 같은 대규모 행사였다. 필자는 부산지역 국제개발협력 NGO의 대표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부산의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관심도와 분위기는 미미한 편이다. 행정기관이나 일선 학교의 인식도 비슷하다. 공적개발원조 중 무상원조를 주관하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민간단체에 일부 사업을 위탁지원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코이카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소액구호기금 조성을 위해 동전 모으기 행사 참여를 권유하면 서울의 유명 NGO에는 관심을 보이면서 지역 기관은 외면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다행히 국제개발협력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산지역에 다소 활력이 생겨나고 있다. 작년에 코이카 부산지역센터가 개소돼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 전문성이 부족하고 독자적으로 일을 수행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 분위기는 촛불처럼 알음알음 주변으로 퍼져 나가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인식들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는 글로벌 코리아를 위해 나아가야 하겠다. 기아와 빈곤으로 혼자 극복하지 못하는 지구촌에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갈 때 진정 공존공생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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