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 선거구. 국민당 강신영 후보는 5만169표에 그쳐 민정당 봉두완 후보(15만8603표)에 현격한 표차로 낙선했다. 그는 한동안 정치판에 발을 끊었다가 15년 후인 1996년 15대 총선에 다시 나섰지만 또 고배. 결국 16대 총선에서야 고향인 대구 동구에서 67.18%의 압도적 득표율로 금배지를 달 수 있었다. "영화배우 신성일이 출마했다는데 찍어주려고 보니까 이름이 없네." 본명 강신영을 강신성일로 개명해야 했던 이유다.

2008년 10월 브라질 지방선거에 버락 오바마가 출마했다. 그것도 무려 8명이나. 당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흑인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등 쟁쟁한 백인들을 누르고 후보로 확정되자 너도나도 오바마로 개명해 출마한 것. 브라질은 후보가 모욕감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개명할 수 있어 선거 때마다 이런 '짝퉁'들이 쏟아진다. 재밌는 것은 8명의 오바마가 모조리 낙선했다는 것. 그런데도 2012년 선거에서 오바마가 16명으로 늘었으니 낙천적인 브라질 국민답다.

나름 소신 있는 개명도 있다. 6·4지방선거 경기 광주시의원에 출마한 무소속 박일등(50) 씨. 학력은 중졸, 직업은 낮에는 구두닦이, 밤에는 복싱체육관 관장이다.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출마 '스펙'이 아니다. 그런데도 2010선거에 이어 재도전이다. 당시 1328표(5.61%)를 얻어 6명의 후보 중 5등을 했으니 선전(?)한 셈.

낙선 직후 박윤호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두고 굳이 박일등(朴壹登)으로 개명했다. "평생 1등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개명 사유. 출마의 변은 더욱 호탕하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 있는 자, 배운 자만 권력을 가져야 하고, 정치 하라는 법이 있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던 진(秦)나라 말기 진승, 오광이나 고려 무신정권기 최충헌의 가노 만적의 사자후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서민'적인 후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쩐지 납득이 안 가는 개명도 있다. 박승호(56) 새누리당 경북도지사 예비후보가 지난 9일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박정희 씨'를 '구미 씨'로 개명하는 건 찬성"이라고 풍자해 화제가 됐다. 박 예비후보가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 '박정희 시'의 도지사 선거 쟁점화는 무산됐지만 포항시장까지 지낸 이가 낸 공약치고는 수준 이하. 개명도 개명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