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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낙동강의 시 /이성희

노을 빛나는 갈대숲, 콘크리트 보와 둑이 가로막은 죽음의 강

내 마음 속의 낙동강 언제 또 볼수 있을까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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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3-10-23 20:01:21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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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그 황폐한 강의 끝에 부산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강을 기억하십니까? 낙동강 말입니다. 내가 느끼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형은 어린 시절 낙동강 갈대숲에서 만났던 저녁노을입니다. 신비로운 밀교의 주술처럼 철새들이 날아오르고 바람에 일제히 몸을 누이는 수천 평의 갈대숲 위로 물들어 오던 노을의 빛깔, 그 황홀한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그 뒤로 '당신이 나에게 바람부는 강변을 보여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기도')라는 황동규의 시 구절을 발견하고 얼마나 감격했던지요. '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완화삼')라는 조지훈의 시는 낙동강의 풍경을 그리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지요. 내가 여전히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아마 그 어린 시절 낙동강의 황홀한 충격을 온전히 담아낼 언어를 만나기 위한 먼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황폐한 강. 그 황홀한 충격은 그만큼 참혹한 배반을 감추고 있었지요.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군대를 갓 제대한 나는 형을 초대하여 하단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지요. 야 서울 촌놈아, 니는 하단 갈대숲의 노을을 함 보면 미치뿔기다. 큰소리를 치면서 의기양양하게 앞장 서 갔던 그날의 참담함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갈대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솟아 있었지요. 그리고 강을 가로막는 거대한 콘크리트의 둑(하구언)을 우리는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내 마음 속의 낙동강은 한 번 죽었습니다.

풍수가들은 태백산과 황지못은 백두대간의 허리에 있는 혈맥이라고 합니다. 낙동강은 황지못에서 발원하여 백두대간의 허리 아래를 흐릅니다. 따라서 낙동강이 죽으면 이 땅의 하반신이 죽는 것이지요. 낙동강은 일종의 수룡인데 하구언은 그 수룡의 배설구를 막아버린 셈입니다. 어찌 수룡이 살 수 있겠습니까.

1927년 발표된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에 나오는 노래 하나를 들어 볼까요. '봄마다 봄마다/불어 내리는 낙동강물/구포벌에 이르러/넘쳐 넘쳐 흐르네./흐르네 에헤야./철렁철렁 넘친 물/들로 벌로 퍼지면/만 목숨 만만 목숨의/젖이 된다네 에헤야'. 글쎄요, 구멍이 막혀 썩은 물이 만만 목숨의 젖이 될까요, 독이 될까요?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을숙도 새들도 정말 자기들의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며칠 전 형이 전화를 해서 꼭 한번 보라고 했던 모 방송국 스페셜 '물은 누구의 것인가 1부-4대강의 반격'은 정말 안 보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방송국 홈페이지를 찾아 다시보기를 누른 뒤에 나는 몇 번이고 꺼버리고 싶었습니다. 겨우 끝까지 다 보고 난 다음, 끓어오르는 분노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수십 조의 세금을 꿀꺽 삼킨 괴물 같은 콘크리트 보가 가로막은 강은 흐르지 않는 강, 녹조라떼의 강, 죽음의 강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의 낙동강은 두 번 죽었던 것입니다.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낙동강/그 맑은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안도현, '낙동강')는 시인의 바람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형이 보라고 한 그 악마 같은 다큐에서 정말 섬뜩했던 것은 창령 길곡초등학교 미술시간 장면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낙동강은 인공구조물로 가득 찬 직선의 강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강이 일직선처럼 보여요." 강에서는 "위험해서 안 놀 거예요." 아이들의 눈은 가장 정직한 우리의 눈이며, 또한 우리 미래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이미 낙동강은 굽이치는 자연의 유장한 곡선과 감응하는 생명의 즐거움이 사라진 강입니다.

형, 물은 썩고, 천년의 습지와 갈대숲과 버드나무 군락지는 사라지고, 새들은 떠나고,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그리고 시가 사라졌습니다. 시가 사라진 강은 진짜 죽은 강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 다시 형을 초대하여 이번에는 진짜로 갈대숲 위로 번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동강 노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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