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에 있어 직업은 인생관, 배우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선택의 하나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인적 자원이 각 분야에 골고루 배정되지 않고 편중되면 나라와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공대 출신 기업인·교수·엔지니어들 모임인 공학한림원이 최근 작성한 '2012 공학기술계 우수인력 양성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공대생들의 희망 직업 1위는 의사 및 한의사(15.8%)였고, 그다음이 공무원과 금융인으로 각각 11.7%를 차지했다. 전공을 살려 공학자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공대생 10명 가운데 공학 관련 직업을 꿈꾸는 학생이 채 1명도 되지 않는 것은 충격적이다. 1960년대 초·중반 필자 또래들의 대학 시절에는,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경영대학과 더불어 공과대학의 입학시험 커트라인이 가장 높을 정도로 학생들이 공대를 선호하였다. 또 화학·조선·자동차 등 우리의 성장동력을 이룩하는 데 공학자나 과학자, 기술자들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0년대 전 세계에서 국민소득 순위가 100위권 밖이었던 한국이 10위권으로 진입한 데는 공학 및 과학기술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공대 출신 직장인들의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근무지 또한 대도시가 아닌 나라의 변두리 공단지역이라 문화생활 등 복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데 따른 불만이 있은데다 , IMF 사태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기술인력들이 타 직종보다 조기에 직장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공대 졸업자들은 전공을 살린 취업을 포기하고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 몇 년 전 공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기업에 취직하였다가 30대에 사직하고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남편을 둔 여판사와 함께 근무하면서 이공계의 현실을 피부로 접했다. 거제에 있는 조선계통의 세계적인 인재가 다시 태어나면 공대를 가지 않겠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로 엔지니어에 대한 기피현상이 만연하다.
1990년대에 싱가포르 리콴유 전 수상은 주변의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인구와 자원이 많은 나라에 둘러싸인 상황을 직시하고 국내시장을 넘어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국가운영 방침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라 싱가포르 정부는 각 대학의 법학과와 의학과의 정원을 감축해 국내시장에서만 활동하는 전문 인력의 수를 축소해 가는 한편, 해외시장 개척에 필요한 인력의 수를 늘려갔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상황도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오늘날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선도 과학기술 없이는 나라의 희망은 물론 미래도 없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사농공상의 의식이 남아있고, 기술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높지 않은 편이다. 과학기술자들 또한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긍지나 자존감이 부족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계, 법조계에 대한 동경은 뿌리 깊다. 하지만 이들 직업은 질병이나 분쟁 등 타인의 불행한 상황을 전제로 하는 소극적 업무이지 사회를 적극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는 없다.
국가 균형발전을 도모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의 근무환경과 사회적 대우를 개선하여야 함은 우리가 해결하여야할 시급한 책무이다. 그리고 기술자들 자신도 이 사회를 굳건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2002년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해 연구원(주임)이 되었고,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승진시험도 거부한 채 주임 직위를 고집하였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인물이 드러나지 않을 뿐 많이 있을 것이고, 더 많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기술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에 대하여 긍지를 갖도록 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모든 직업은 가치가 있고 귀천이 없는데, 자기의 직업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미국 대통령이 된 트루먼의 어머니는 어느 기자가 대통령이 된 아들이 자랑스럽겠다고 하자 "나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나의 아들도 무척 자랑스럽다"고 하였다. 그 울림을 되새겨 볼 때다.
법무법인 국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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