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하는 사람들은 부득불 한 번씩 듣는 이야기이지만 '공무원 퍼팅'이란 말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꼭 넣겠다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퍼팅한 볼이 홀에 미치지도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것저것 살피느라 지나치게 소심함을 책망하는 거다. 공무원이 '뭐든 안 되는 이유'로 드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규정에 없어서, 전례가 없어서, 예산이 없어서'. 복지부동을 빗대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한때 호기를 부리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무원은 기피 직종에 속했다. 당시 사회의 키워드인 성공·진취·도전·열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지속과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업무 특성 탓이 컸던 듯하다. 상대적으로 박봉인 데다 위계서열이 뚜렷한 계급사회라는 점도 거부감을 보탰다.

세월이 변해 그런 공무원이 '신의 직장' 반열에 올랐다. 말단 직급인 9급 공무원 시험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가 됐다. 취업난에 불안정한 고용구조가 반영된 것이긴 하나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올해 9급 1호봉 공무원 월급은 일반행정직 기준으로 119만7825원. 여기엔 정근수당·성과수당·가족수당 등 각종 수당이 제외됐다. 이들 수당을 합하면 초임 9급 공무원 월급은 족히 200만 원가량 된다. 주로 맡는 대민 업무에서도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하고 보람도 있다. 성실하게 일하면서 8급, 7급, 6급 등으로 진급하는 성취감도 적지 않다.

올해부터 9급 공무원 시험에 수학 과학 사회 등이 선택 과목으로 채택돼 대학 진학보다 공무원 진출을 선호하는 고교생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행정법과 행정학이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돼 고졸자에 사실상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던 요소가 제거된 셈이다.

공무원 시험에 지원자가 몰리는 건 추세다. 그러나 초등학생들 중에도 장래 희망을 물으면 '9급 공무원 합격'이라는 응답이 나올 정도라면 심상찮은 일이다. 실패한 젊은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은 고사하고 자립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도전과 모험을 함부로 권장하는 것도 위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