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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삼복더위 /신명호

삼복은 가을기운이 여름기운에 맞서다 항복한 날이란 뜻, 격조있게 기다려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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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8-08 19:50:3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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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김창협이 어느 날인가 제자들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삼복은 반드시 경일(庚日)에 드는데 경(庚)은 금(金)이다. 화(火)는 반드시 금(金)에게 복종하는데, 복날이 매우 더운 것은 도대체 무슨 이치일까? 옛사람 중에는 설명한 사람이 없다. 복날이 매우 더운 이유를 알아보라."

전통적으로 초복은 하지 후 세 번째 경일이고, 중복은 하지 후 네 번째 경일이며, 말복은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다. 하지란 말 그대로 여름의 절정이다. 여름기운인 화가 최고인 날이 하지인 것이다. 이에 비해 경일은 금을 상징하는데, 금이란 가을기운이다.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그것이 또한 화가 금에게 복종하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경일에 드는 삼복 날은 가을기운인 금이 들어 있어서 시원할 듯도 한데 거꾸로 여름 기운인 화가 극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 년에 걸쳐 길게 보면 가을기운이 여름기운을 이기는 것이 정상이다. 또한 여름의 절정인 하지가 지나면 점차로 가을기운이 강해지는 것 역시 정상이다. 특히 하지 후 세 번째의 경일에는 이미 가을기운인 경일이 두 번이나 지난 시점이라 가을기운이 훨씬 강해지는 것이 더더욱 정상이다. 사람들이 그리 믿으니 하지 후 세 번째 경일의 가을기운 역시 그리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여름기운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여름기운을 이기기에는 시기상조이다. 때 이른 도전에 나섰던 가을기운은 여름기운에 두 손 들어 항복하고 씻은 듯이 사라진다. 초복이란 가을기운이 처음으로 여름기운에 도전했다가 항복한 날이란 뜻이고, 이날 유독 더운 이유는 가을기운이 여름기운에 두 손 들어 항복하고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번 항복했던 가을기운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 세 번 도전하고 또다시 항복한다. 중복과 말복이 그것이고 삼복더위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다.

옛사람들이 터득한 최고의 피서 원칙은 피서법이라는 말 자체에 들어 있다. 피서법이란 삼복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란 뜻이다. 이 말에는 삼복더위에 맞서 싸우지 말고 멀찍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삼복더위는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가을기운도 항복한 터에 어찌 인간이 삼복더위에 대항해 싸운단 말인가? 하늘의 순리에 따라 가을기운이 항복한 그날 인간 역시 완전히 항복하고 삼복더위가 없는 곳으로 피해 달아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하지만 그 달아남은 비참한 도주가 아니라 일상으로부터의 유쾌한 탈주였다. 탈주는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 입는 것에서도 일어났다. 삼복 날에는 개를 잡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개장이나 붉은 팥으로 쑨 죽 또는 닭에 인삼을 넣어 요리한 삼계탕을 먹었다. 또 밀전병을 요리해 먹기도 했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수박을 갈라 먹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시원한 모시옷과 단오선(端午扇)으로 삼복더위로부터의 탈주를 감행했다.

그러나 최고의 탈주는 역시 일상적인 공간으로부터의 탈주였다. 그렇다고 꼭 산 넘고 물 건너의 머나먼 이국일 필요는 없었다. 집 가까이에도 탈주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는 삼복더위에서 탈주하는 여덟 가지 방법이 묘사되어 있다. 소나무 숲에 마련된 활터에서 활쏘기, 홰나무 숲에서 그네뛰기, 물가에서 투호하기, 방마다 문 열어 놓고 바둑 두기, 연못가에서 꽃구경하기, 옆 동산에 올라 매미소리 듣기, 밤늦도록 시 짓기, 달밤의 냇가에 발 담그기가 그 방법들이다. 다산의 탈주에서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의 탈주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격조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올여름의 삼복더위는 유난히 심하다. 기상난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하다. 이런 때일수록 자연의 난폭함에 과잉반응하지 말고 인간의 격조를 지키면서 자연의 섭리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다시 네 번째 도전에 나서는 가을기운이 이제부터는 이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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