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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영남해로(嶺南海路) /신명호

수천 년 역사 통해 형성된 해양문화, 육지에 잠식돼…보존할 길 찾아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4-04 19:48:1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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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역사지리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서 "무릇 사람에게는 멈춤과 움직임이 있다. 사람은 멈추면 집에서 머물고, 움직이면 길에서 다닌다"고 하였다. 진실로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집과 길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집에 머물면서 고립적 정착적 문화를 형성, 발전시켰다. 반면 길을 다니면서 유동적 유목적 문화를 형성, 발전시켰다.

길에는 사람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물자와 정보도 더불어 유통되었다. 고립적으로 정착해 있던 사람들은 길을 통해 서로 간에 연결, 통합되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 미약했던 전통시대에는 길이 정보통신망의 역할까지 했다. 전통시대 길에는 육로와 해로가 있었다. 농업문화가 육로, 토지, 농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해양문화는 수로로서의 해로, 포구, 어촌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전통시대 영남의 농업문화 역시 육로인 영남대로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반면 해양문화는 해로인 영남해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영남해로는 작게는 영남지역 해양문화의 대동맥이며 크게는 우리나라 해양문화의 대동맥이기도 하였다. 영남지역의 앞바다와 도서 사이에 미로처럼 형성된 영남해로에는 주변의 어촌과 포구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람과 물자, 그리고 정보가 유입되었다. 그것들은 멀리 바다 건너 일본, 유구,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경상도 낙동강과 태화강 등 내륙 하천으로부터도 흘러들었다. 이렇게 유입된 사람과 물자 그리고 정보는 다시 영남해로를 통해 주변의 어촌, 포구, 경상도 내륙 그리고 수도 한양과 바다건너 외국에까지 유통되었다.

영남해로의 시작은 선사시대의 항해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영남해로의 주변에 산재한 선사시대의 패총들이 그 증거이다. 패총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물에는 선사시대의 바다환경, 사람들의 생활문화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이 온축되어 있다. 선사시대를 거쳐 삼한시대의 철 유통 그리고 고려시대의 조운을 거치면서 영남해로는 더욱 발달하였다. 특히 고려의 수도가 황해도 개경에 위치함으로써 영남지역의 사람과 물자, 세곡(稅穀)을 수도로 운반하기 위한 조운로가 발달하면서 영남해로는 크게 발달했다. 하지만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하면서 영남해로는 나라의 조운로가 아니라 왜구의 침략로가 되었다.

조선건국을 전후하여 중앙정부는 왜구를 근절하고 해안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수군을 확대했다. 또한 해양과 도서 지역으로의 진출도 적극 추진했다. 이에 따라 조선건국 후 수십 년간 영남해로는 조선수군과 왜구들 사이의 해전 장소로 변했다. 세종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평화교린 체제가 성립된 이후 영남해로는 평화의 바닷길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시기에는 또다시 조선과 일본 사이의 해전 장소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평화의 바닷길이 되었다.

조선시대 영남해로 주변에 형성된 포구, 어촌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왜구진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고려 말 왜구가 창궐할 당시 폐허화 되었던 경상도의 포구, 어촌에는 먼저 수군진보로 개척되기 시작했다. 군사적 요충지가 되는 포구에 일차적으로 수군진보가 들어서면 이어서 그 주변 포구에 어민들이 모여들어 어촌, 어항이 발달했던 것이다. 그렇게 발달한 수군진보와 어촌의 바닷사람들이 거친 바다와 싸워가며 일구어낸 삶의 문화가 곧 오늘날 영남의 어촌문화이자 해양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영남해로 주변 역시 육지와 마찬가지로 근대화되었고 현대화되고 있다. 문제는 유동적, 유목적 해양문화를 상징하는 영남해로 주변지역이 고립적, 정착적 육지문화의 논리에 따라 근대화되었고 현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안바다의 무분별한 매립, 지자체에 따른 고립적 개발 등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이 결과 수천 년에 걸쳐 형성, 발전되었던 영남해로의 해양문화는 여기저기에서 지워지고 토막 나면서 약동하는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영남해로 권역의 각 지자체들이 유동적, 유목적 해양문화에 입각한 연대 전략을 발굴하여 상생의 길을 찾으면서 동시에 영남해로의 해양문화를 보존, 활용할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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