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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좌수영 성지의 송씨 할매당 /신명호

왜적 방어 최선봉…일제 말살하려하자 성역화해 지켜내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2-07 19:52:3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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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수도 되려면 역사·문화 살려야

부산 수영의 팔도시장 안쪽에서 수영사적공원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커다란 석제 홍예문이 나타난다. 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곰솔나무와 그 옆의 자그마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곰솔나무는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이 있을 당시부터 신성시된 나무이고, 건물은 1981년 김기배 씨에 의해 신축된 송씨 할매당이다. 수영 주민들에게 수영사적공원은 당산이고 곰솔나무는 당산목, 그리고 송씨 할매당은 당집인 셈인데 그 의미가 자못 비장하다.

현재 송씨 할매당에는 수호신(守護神)과 독신(纛神)의 두 신이 모셔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 두 가지가 전한다. 첫 번째 전설은 이렇다. 일제 때 수영동에 살고 있던 송씨 할매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일본 군인의 희롱을 받게 되었다. 이때 송씨 할매가 일본 군인을 대적하여 과감하게 싸워 그를 물리치고 나무를 하여 집에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뒤 송씨 할매가 죽자 그녀의 장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당을 세워 송씨 할매를 모시게 되었다. 두 번째 전설은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이 있을 때부터 산신제를 지내던 전통이 있었는데, 그 전통이 송씨 할매당으로 전해졌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전설은 경상좌수영의 아픈 역사를 대변한다. 경상좌수영이 현재의 부산 수영 지역에 처음 자리 잡은 것은 조선 선조 때였다. 이후 감만이포으로 옮겨졌던 10여 년을 제외하고 경상좌수영은 근 300년간 현재의 수영 지역에 존속했다. 그 동안 경상좌수영은 바다를 통한 왜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최선봉 수군의 임무를 수행했다.

경상좌수영의 총사령관은 좌수사였다. 그의 명령권은 독(纛)이라고 하는 깃발로 상징되었다. 전쟁 또는 훈련 때에 좌수사는 독을 내걸고 수군을 지휘하였다. 평상 시에는 독당(纛堂)이라고 하는 건물에 독을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경상좌수영은 크게 객사 영역과 수군 영역으로 구분되었다. 국왕을 상징하는 객사, 그리고 왕권을 대행하는 좌수사가 근무하는 동헌이 자리 잡은 곳이 객사 영역이었다. 반면 경상좌수영의 수군들이 집결해 있던 곳이 수군영역이었다. 동헌 뒤편에 자리한 독당 역시 객사 영역에 속했다. 경상좌수영의 객사, 동헌 그리고 독당은 모두가 왜적의 침략을 물리치려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결의를 상징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직전인 1895년(고종 32) 7월에 경상좌수영은 갑자기 폐지되었다. 당시 조선에는 근대 해군이 건설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경상좌수영이 폐지됨으로써 부산 앞바다는 물론 육지 지역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1907년에 일본군대가 경상좌수영과 다대포 등에 침입하여 무기를 약탈했다는 기록이 '매천야록'에 보일 정도로 당시의 부산 지역은 무방비상태였다.

일제 때 부산은 식민 도시로 크게 발달했지만 역사와 문화의 말살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참하게 말살당한 역사와 문화가 경상좌수영이었다. 일제 때 좌수영의 객사, 동헌, 독당은 물론 성곽도 대부분 사라져버렸고 좌수영의 기억도 잊혀졌다. 그때 송씨 할매로 상징되는 수영 주민들이 좌수영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용맹하게 분투했던 것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일본 군인의 희롱을 받은 송씨 할매가 일본 군인을 대적하여 과감하게 싸워 그를 물리쳤다는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수영 주민들은 일제에 의해 말살된 객사, 동헌 그리고 독당이 있던 곳을 당산으로 성역화하고 그곳의 곰솔나무를 당산목으로 숭배함으로써 좌수영의 기억을 지켜냈다. 나아가 객사와 동헌이 있던 곳에 송씨 할매당을 세우고 독을 모심으로써 왜적의 침략을 물리치려던 조상들의 결의를 계승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도 어언 7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 동안 부산은 최첨단 도시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자칭 타칭 해양수도라 자부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좌수영의 역사와 문화는 참혹할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다.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되려면 최소한 송씨 할매의 용기와 지혜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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