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복싱은 18세기 영국에서 탄생했다. 검술과 곤봉술로 유명했던 제임스 피그가 1718년 런던에 복싱 아카데미를 개설해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맨손으로 싸워 이긴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져 복서를 '프라이즈 파이터'라고 불렀다. 이게 프로복서의 효시인 듯. 글러브를 끼고 1라운드 3분에 휴식 1분, 다운 이후 10초 이내에 일어나지 못하면 상대편의 승리로 인정하는 '퀸즈베리 룰'이 생긴 건 1892년.

우리나라에서 복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김기수 선수의 활약 때문. 1966년 이탈리아의 벤 베누티를 상대로 WBA 미들급 타이틀전을 벌여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프로 복싱계의 신화적인 경기를 꼽으라면 1977년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전. 홍수환 선수가 적지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4번 다운되고서도 다시 일어나 상대를 KO시킨 경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유명한 멘트를 남기기도.

어려웠던 시절 복서라는 단어 앞에는 어김없이 '헝그리'라는 말이 붙어다녔다. 배고픈 현실을 맨주먹으로 돌파하겠다는 파이터의 정신을 담고 있는 듯.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더 복서(The Boxer)'의 노랫말은 배운 것 없이 복서가 되어 뉴욕으로 간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다. 작사자 폴 사이먼은 실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무명 복서 생활을 하다 링에서 숨진 남미 출신 복서 베니 페랏의 비극적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힘들고 외롭지만 링을 떠날 수 없다는 복서의 심정이 애절하다.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조 프레이저가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저돌적인 공격, 전광석화와 같은 레프트 훅은 그의 전매특허. 무하마드 알리를 물리쳤던 1971년의 명승부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 하지만 1975년 세번째 대결에선 알리에게 패배했다. 알리는 경기 후 "죽음에 가장 근접한 시합이었다"고 회고. 

두 사람의 대결 이후 알리는 파킨슨병에 시달리고 프레이저도 열패감에 빠졌으니 챔피언의 영광은 잠시일 뿐. '링에서 죽는 게 두려웠다'던 김태식 전 세계챔피언의 말처럼 죽음에 맞선 복서의 길은 외롭고도 험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