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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사람을 꿈꾸는 도시 /김수우

흙이 살아 숨쉬고 정신이 살아 있는 문명의 한복판, 부산을 갈구한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9-16 20:49:4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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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포트 물이 끓는 소리가 낮은 날갯짓 같다. 많은 신호등을 건너 한 모퉁이에 닿은 자신이 문득 기특하다.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서면 어쩌면 잘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자주 마주치는 길고양이나 비둘기에게 나도 하나의 풍경이겠지. 그래, 이것이 도시다. 도시화는 이미 취사선택할 수 없는 문명의 한복판이다. 우리나라 도시거주는 인구의 90%에 가깝다. 초고층 빌딩들, 아파트숲, 밀리는 자동차들, 즐비한 간판들, 그 사이로 무수한 법률이 톱니바퀴처럼 촘촘하다. 도시는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생성되고 공유되는 공간이지만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일상은 끝없는 소비와 경쟁으로 작동한다. 더 나은 문명의 이기들이 제공됨에도 불구하고 환경오염, 교통, 빈민, 실업, 소외 등 도시문제가 심각하다.

정말 우리는 도시를 꿈꾸는가. 아니, 도시는 사람을 꿈꾸는 걸까. 6000년 전 고대 수메르인에 의해 생겨난 인류 최초의 도시 에리두로부터 21세기 부산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주요한 삶의 현장이다. 상형문자와 설형문자를 발명해서 역사시대를 연 수메르인은 도시 에리두를 건설하고 '에둡바'라는 학교를 운영했다. '에둡바'는 필경사들의 양성소였고 지성과 지혜의 전당이었다. 수메르어로 '둡-사르'인 이들은 서판을 만들고, 위대한 신화와 목록과 그 의미를 일일이 짚었다. 언어·문자·종교·신학·정치·과학·법률·예술·동식물학에 이르기까지 수메르인의 지성은 인류 문명의 수원지가 되어준 것이다. 신들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산문시로 쓰였고, 영웅들의 삶이 서사시로 기록되었다. '길가메쉬' 같은 작품이 그렇게 남아있다. 게다가 격언이나 속담, 수필, 우화 등도 쏟아져 인문학적인 문명을 창출했다.

수메르, 하면 제일 먼저 부지런히 점토서판을 만드는 흙의 노동이 떠오른다. 동시에 우리의 대장경만큼이나 혼신을 기울여 문자를 기록하는 진지한 손도 함께 연상된다. 흙이 있었고, 손이 있었고, 그리고 정신세계가 있었다. 현재까지 필경술로 기록된 점토판이 50만 장 이상 출토되었고, 상당수 아직도 해독되지 않은 채 쌓여 있고, 미발굴도 많다. 긴 세월 땅속에 묻혀 있던 수메르의 점토서판은 만년서의 생명력을 과시하면서 인간의 지성적 사고를 그대로 표출해낸다. 기름진 땅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산업자원이라 할 만한 것도 점토와 갈대 정도뿐이었지만 존재를 향한 인식과 열정은 그렇게 그리스로 히브리로 전파되어 갔으리라.

제1회 세계인문학포럼이 11월에 부산에서 열린다. 인문학은 유기적인 고리가 끊긴 도시에 다시금 '역사성'과 '장소성'을 심는 작업이다. 일상의 모퉁이를 생명의 질서와 문화의 향기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화적 시선이 필요하다. 신화적 시선이란 원래를 기억해내는 힘을 말한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전체적인 어떤 원형의 세계를 찾아보자는 말이다. 그 안에 미래의 지혜가 예비되어 있진 않을까. 우리 문화가 고대 수메르의 문화와 그 원형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도 유의미하다.

흙이 살아있는, 손이 살아있는, 정신이 살아있는 도시가 간절하다. 흙은 지속가능한 생태의 기초, 손은 실천하는 삶, 정신은 공감의 능력을 의미한다. 서판을 빚고 거기에 온 마음을 기울여 문자를 새기던 필경사 '둡-사르'의 손이 곧 인문의 실천이 아닐까. 세계를 향해 열린 도시라면 좀더 용감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흙을 밟게 하고, 입이 아니라 손으로 실천하는 법과 공감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모두 입뿐이고, 아직도 개발에만 여념하고 있다. 부산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융합된, 균형 잡힌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까.
도시는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꿈꾼다. 사람은 지식을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창조하는 도시를 꿈꾼다. 개발 중심 소비 중심의 도시가 아니라, 러브스토리가 넘치고 생명의 축제로 넉넉한 그런 도시 말이다. 도시화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미래라면 부산을 아침 숲길이 넘실대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한 생태와 근원에 대한 기억과 타자에 대한 배려가 곧 아침 숲길이다. 무수한 존재들과 공감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점토판 냄새가 문득 코끝을 스치는 것 같다. 참 아득하다.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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