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경청(傾聽)과 경청(敬聽), 풀어야 할 생명의 매듭들 /김수우

듣는다는 것은 예지를 낳는 힘…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14 19:56:46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춥다. 아무리 따뜻한 걸 걸쳐도 몸과 마음이 춥고 맵다. 도대체 우리는 뭘 잘못한 것일까. 어쩌다 생명의 매듭이 이렇게 마구 엉켜버린 것일까. 한반도가 비명으로 가득한 것 같다. 구제역으로 150만 살처분이라는 현실이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한다. 존재의 경이와 신비가 이토록 무참해져야 하는가. 참혹한 울음과 그 울음을 덮어버리는 손의 절망이 두렵다. 이 땅에 그렇게 많은 비명이 울려도 괜찮은 걸까. 이제 우리는 그 비명을 경청해야 하지 않을까.

이태 전 시골에서 네댓 마리 소를 키우던 동서의 눈물이 생각난다. 한겨울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하도 추운 새벽이라 송아지가 그만 무릎을 펴지 못했다. 그때부터 동서가 앉은뱅이 새끼를 끌어안고 우유를 먹이는데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열흘 못 가 죽고 말았다. 그때 동서는 제 새끼를 잃은 듯 한동안 줄줄 울었다. 그 절실하고 뜨거운 통증에서 읽히는 어떤 경외가 나를 오래 반성하게 했다. 경청은 그러한 생명의 간절함 그 자체인 것이다.

경청(傾聽)은 경청(敬聽)에 다름 아니다. 귀를 기울이고 주의해 듣는다는 것은 공경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이는 소통의 기술로서의 경청이 아니다. 삶의 근본과 존엄을 체득하는 행위이다. 경청은 사람에 대한 최대의 예우이며 모든 관계를 출발시킨다. 사랑을 시작하는 자리인 것이다. 자연을 경청하는 것도 근원적 세계에 대한 예우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오늘 우리는 하늘을 경청하고 꽃지는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바람 속에는 얼마나 무수한 음성들이 실려 있는가. 우린 자연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까. 먹고사는 일을 핑계로 자연의 말을 무조건 막은 적은 없었는가.

듣는 능력이 말하는 능력을 결정한다고, 경청하는 법이 실용적 지식으로 유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엇을 경청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너도나도 경쟁이나 자본의 논리에 귀를 곤두세우는 세태이다.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떻게 쾌락을 소비할 것인가에만 귀가 열려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대화가 부족하면 모든 소통체계는 저절로 낡아가고 끊어지고 만다. 이 때문에 정말 문제가 생겼을 때 내 말을 경청하는 자를 찾기가 어렵다. 정신과 의사나 역술인을 만나는 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꼬박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공경하는 귀를 갖자.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예지의 특권이라고 선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경청은 예지를 낳는 힘인 것이다. 이 시대만큼 본래를 들여다보는 예지가 필요한 때가 있을까. 과연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이 문명의 방향을 고뇌해야 한다. 돈과 명예에 귀 기울인 분주한 일상을 스스로 깨뜨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실용적인 듣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청하는 마음의 훈련이 절실하다. 그럴 때 생명의 매듭이 올올이 자연스럽게 풀려가지 않을까. 누군가 내 말을 잘 들어줄 때 스스로 존중감을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미소가 죽어가며 낳은 송아지를 다시 살처분하는 기막힌 상황은 분노를 넘어 캄캄하다. 육식을 위한 사육의 한계도 그렇고, 4대강 개발도 그렇고, 억울한 비명으로 하루하루 가슴밑이 서늘하다. 그 죽음들도 다이아몬드처럼 무수히 반짝거리며 이 별을 구성하던 생명이었다. 땅밑에서 함부로 저물어버린 모든 비명을 경청할 때 우리가 갈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식물도 동물도 모두 솜털을 세우고 있다. 주위는 온통 생명의 맥박으로 쿵쾅거린다. 심정의 소리를 경청할 때 비로소 우리 안의 진정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낮은 떨림에도 물방울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자. 타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바다와 같다는데, 바로 그 바다 같은 귀가 너무 간절하다.

제 새끼를 잃은 어미 같은 뜨거운 통증으로 무릎을 꿇자. 막다른 길, 내 안과 바깥의 불경스러운 삶을 하나씩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현명한 질문도 조용한 대답도 주의깊게 들을 때 열리는 문이다. 공존이란 집중해서 듣는 경청과 공감에서 나오는 것. 우리 주변의 미세한 소리, 무수한 생명의 울림에 공경스러운 귀를 가질 일이다. 오염된 풍경을 끌어안고 정말 펑펑 울어볼 일이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경남 행정통합안 9월까지 낸다
  2. 2사람 때리고, 전선 끊고…까마귀 행패에도 지자체 속수무책
  3. 3아파트서 떨어진 50대 男, 80대 행인 덮쳐 모두 사망
  4. 4부산 동구 빈집, 예술촌으로 부활
  5. 5부산형 워케이션 인기몰이…글로벌 참가자도 “방 있나요?”
  6. 6롯데 ‘5연속 위닝’ 아쉽지만…하위권 상대 치고 오른다
  7. 7부산시의회 의장단 18일 선출…막판까지 치열한 득표전
  8. 8건설비 증액 탓에…부산 중부서 신청사 준공 4번째 연기
  9. 9[도청도설] 7급 유튜버 공무원
  10. 10분산에너지법 전기료 호재 “부산 데이터센터 유치 속도내야”
  1. 1부산시의회 의장단 18일 선출…막판까지 치열한 득표전
  2. 2우원식, 상임위 野 11 與 7 권고에도…법사위 쟁탈전에 파행
  3. 3민주, 채상병 국조도 시동 “특검법과 동시 추진”
  4. 4與 “이재명 위해 野 사법부도 무력화”
  5. 5시의회 의장 안성민·박중묵 2파전…이대석 막판 부의장 선회
  6. 6與 민생특위 위원장·대변인 등 PK 초·재선, 對野 공세 선봉에
  7. 7김정숙 여사, "인도 방문 초호화 기내식" 의혹제기한 배현진 고소
  8. 8“130만 취약가구 月5만3000원씩 에너지 바우처 지원”
  9. 9상임위 장악 거야, 채상병특검·방송법 대정부 전방위 압박
  10. 10푸틴 방북·野 입법 독주…중앙亞 순방 끝낸 尹 난제 산적
  1. 1부산형 워케이션 인기몰이…글로벌 참가자도 “방 있나요?”
  2. 2분산에너지법 전기료 호재 “부산 데이터센터 유치 속도내야”
  3. 3수산업·ICT 접목…미래산업으로 키운다
  4. 4K-조선 수출 지원 총력전…금융권, RG(선수금 환급보증) 15조 더 푼다
  5. 5공정위, 쿠팡 ‘멤버십 의혹’ 캔다(종합)
  6. 6“분산에너지법 시행, 재생에너지 활성화 기대”
  7. 7반격나선 최태원 회장 “재산 분할 명백한 오류”(종합)
  8. 8주가지수- 2024년 6월 17일
  9. 9가덕신공항 설명회, 건설사들 반응 냉담…2차 입찰도 불투명
  10. 10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부산항과 대교…원도심 최고 하이엔드 아파트
  1. 1부산·경남 행정통합안 9월까지 낸다
  2. 2사람 때리고, 전선 끊고…까마귀 행패에도 지자체 속수무책
  3. 3아파트서 떨어진 50대 男, 80대 행인 덮쳐 모두 사망
  4. 4부산 동구 빈집, 예술촌으로 부활
  5. 5건설비 증액 탓에…부산 중부서 신청사 준공 4번째 연기
  6. 6부산 의료대란 없을 듯…집단 휴진 참여율 적어
  7. 7자치권 쥔 실질적 통합체…시·도민 지지와 시한확정 등 숙제
  8. 8고교학점제 2025학년도 전면 실시…희망대학 권장과목 들어야
  9. 9“전세사기 당했는데 건물 관리까지 떠맡아” 피해자들 분노
  10. 10고2 학생 6명 중 1명 ‘수포자’…수학 기초학력미달 역대 최고
  1. 1롯데 ‘5연속 위닝’ 아쉽지만…하위권 상대 치고 오른다
  2. 2김주형·안병훈 파리올림픽 출전
  3. 3부산 전국종별육상서 금 4개 선전
  4. 4잉글랜드, 세르비아와 첫 경기서 신승
  5. 5안나린 공동 5위…한국선수 15번째 무승 행진
  6. 6손호영 27경기 연속안타…박정태 “제 기록(31경기) 꼭 깨기를”(종합)
  7. 7손아섭, 최다 안타 신기록 초읽기
  8. 824초 만에 실점 굴욕 이탈리아, 알바니아에 역전승
  9. 9‘무명’ 노승희, 메이저 퀸 등극
  10. 10근대5종 성승민, 계주 이어 개인전도 金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연대(連帶)의 중요성과 과학자의 역할
준설, 유일한 치수대책은 아니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AI시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기고 [전체보기]
갑진년 김해시의 ‘값진 주민과의 대화’
부울경 메가시티가 먼저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천덕꾸러기’ 북항재개발 이대로는 안된다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7급 유튜버 공무원
‘주 4일 근무’ 공론화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언제’ 빠진 부산·경남 행정통합…넘어야 할 산 많다
종부세 폐지 논의 앞서 지방재정 피해 대책부터
세상읽기 [전체보기]
‘고립주의’ 미국, 돌아온 ‘정글’…한반도 해법은
부산 청년 수도권 유출, ICT 계열이 가장 심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드론으로 변화할 부산의 미래
  • 유콘서트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