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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망각의 장소 /전진성

그대로 복원했다는 새 광화문 경복궁, 정말 우리 기억이 머무는 장소인가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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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1-10 21:02:2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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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중구에 소재한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 치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일제의 침탈과 근대 부산의 형성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고도 실감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건물이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현장이었음은 아주 간략한 소개로 그치고 있다.

이 유서깊은 건물은 대한민국 건국 후 1년쯤 지난 1949년 7월부터 부산 미문화원으로 쓰이다가 서슬 시퍼렀던 제5공화국 초기에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미문화원 그리고 근대역사관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의미를 좀처럼 헤아리기 힘들다. 건물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얻으려 한들 별 도움은 안된다. 전시실에 건물의 모형이 있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면 외벽의 상당 부분이 가로수에 가려 전체 모습을 가늠하기 힘들다. 부산의 근대사를 보여준다는 박물관이지만 정작 그것이 놓인 장소의 과거와 현재는 그늘에 가려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박물관은 전시 내용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의 참역사를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항도 부산의 역사는 망각의 역사이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현재에 과거는 계속해서 잠식되어 버린다. 이 도시에 기억이 머물 장소는 없다.

수도 서울이라고 어디 다르랴. 복원한 지 채 석 달이 안 되는 광화문 현판에 금이 가서 논란을 빚고 있다. 민족혼이 되살아났다는 둥 떠들썩한 보도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데 이런 일이 빚어져 어리둥절할 뿐이다. 당국은 한사코 별 일이 아니라고, 원목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연스런 마모 과정치고는 너무 급격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 같다. 짐작컨대 정부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서두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번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인위적인 기억의 장소를 만드는 일에는 항상 무리가 따른다는 점이다. 과연 광화문과 경복궁은 정말로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곳인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그 일대에는 독일인 건축가가 설계한 묵직한 서양식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옛 조선총독부 청사다. 일제 식민지배의 총본산이던 그 건물은 해방 이후에는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가 1996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나중에는 수치스런 식민지 유산으로 지목받은 건물이지만 한 때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였다. 바로 이곳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한국전쟁 때는 서울 수복의 날 태극기 게양이 이루어졌다. 과연 이 건물에 대한 어떠한 기억이 올바른 것일까?

광화문과 경복궁을 일본인들에 의해 훼손된 민족의 성지라고 기억한다면 이는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이곳은 일제가 접수하기 전부터 이미 버려진 상태였다. 임진왜란 이후 270여 년 간이나 폐허로 남아있던 이곳은 대원군과 고종 집권기에 이르러서야 중건되었으나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거처를 옮김으로써 폐궁으로 변했다. 심지어 인근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가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 본격적으로 파괴되었다. 일제는 파괴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셈이다.
서울과 부산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의 모든 대도시는 거센 망각의 파도에 휩쓸려있고 그럴수록 인위적인 기억의 방파제를 만들고자 부심하고 있다. 인위적인 작업이니만큼 일부 사실의 과장과 더불어 입맛에 안 맞는 사실의 배제와 축소가 항상 뒤따른다. 기억의 장소는 자칫 망각의 장소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은 광화문을 새로 만들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급조된 광화문이었는데 원래의 것은 일제에 의해 해체되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옆에 놓여있었다. 새 광화문은 중앙청 건물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섰으나 형태에 있어서나 배치에 있어 옛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그것은 총독부 청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렇다면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새 광화문과 경복궁은 과연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망각의 장소가 되지는 않을까?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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