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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나는 오늘 F코드를 잡는다 /서진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한다면 어떤 배움인들 결실 못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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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28 19:38:0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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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의 F 코드는 집게손가락으로 여섯 줄 모두를 꾹 눌러야 한다. 게다가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도 각각 다른 줄을 누른다. 기타를 한 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면 F 코드를 제대로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잡기 쉬운 코드로 되어 있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르페지오로 연주해 본 뒤 '아, 역시 나도 음악적 재능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다음 복병처럼 F 코드를 만나게 된다. 그저 손가락을 정확히 바른 줄에 놓아두면 되는데 맘처럼 쉽게 안 된다.

한때는 뭔가를 배우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려운 수학 공식, 낯선 외국어, 도통 이해하기 힘든 이론들…. 배움 뒤엔 시험이 있고, 시험 뒤엔 더 어려운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긴 학창시절을 지내고 나니 공식적으로 배움과 시험에서 해방되었다. 요즘에는 직장에 들어가도 시험을 쳐야 한다지만 다행스럽게 나는 소설가다.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면 된다. 그래서 한동안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달성하기 힘든 것과는 되도록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 때까지 배운 것이 너무 많아서 그걸 다 써먹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요즘엔 모든 해답이 인터넷에 있다.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해답을 찾아내기 쉽다.

두 달 전에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산책하다 '색소폰, 기타 강습' 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늘 지나가던 곳인데 왜 그날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문득 1년 전에 산 뒤 내팽개쳐둔 기타가 생각났다. 그래서 오랜만에 무언가를 다시 배우는 것을 시작했다. 독학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에게 직접 배우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수학선생님 앞에서 문제를 풀기 힘들고, 영어 선생님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게 힘들 듯이 말이다. 두 달 동안 학원에 다닌 결과, 노래방에서 절대로 부르지 않을 것 같은 노래 몇 곡을 기타 반주와 함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장밋빛 스카프(트로트), 이광조의 나들이(블루스),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포크) 등. 선생님이 7080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시니까 레퍼토리도 내 나이보다는 약간 오래전 것들이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감탄한다.

다시 F 코드 이야기로 돌아오자. 손가락 끝이 몇 번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였다고 뿌듯할 즈음 만나는 장벽 말이다. 그것만 제대로 잡는다면 수십 곡의 노래를 금방 부를 수 있을 텐데 왜 잘 잡히지 않을까? 고작 손가락 몇 개를 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걸 배우기에 내가 너무 늙은 것일까? 혹시 내가 모르는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잡히지 않는 F 코드와 씨름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F코드를 자연스럽게 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 기타의 초급을 벗어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 된다고 하셨지만 왠지 거짓말 같이 들렸다.
거의 포기하려다가 희망이 생긴 건 지난주다. 예전에 배운 노래 '편지'를 기타로 치면서 깜짝 놀랐다. 조금 늦긴 했어도, 손가락이 약간 꼬이긴 했어도 분명히 F코드를 잡았던 것이다. 나도 믿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F 코드를 잡는 지름길은 없었다. 그냥 매일 매일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 해답일 뿐이다. 말은 쉽지만 굉장히 힘든 방법이다. 무엇이든 꾸준히 연습한다면 안 될 일이 없다고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F코드를 익히면서 나는 그 교훈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기타를 배우는 이유가 뮤지션이 되기 위함이 아니고, 미술을 배우는 이유도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그 과정 속에서 깨닫는 '그 무엇'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연마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F 코드를 잡게 되는 것은 덤일 것이다. F코드를 잡더라도 또 다른 장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흘러간 가요를 흥얼거리며 F 코드를 잡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더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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