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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나는'비빔밥 문화'가 좋다 /곽차섭

비빔밥 폄훼한 日人의 칼럼에서 배타적 순혈주의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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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3-14 20:34:1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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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일본 산케이신문에 구로다 가쓰히로가 쓴 '비빔밥은 괴롭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국내 언론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MBC 무한도전 프로그램이 뉴욕타임스에 낸 비빔밥 광고를 문제 삼았다. 그 광고에는 '오늘 당신의 점심 식사로 비빔밥이 어떻습니까?'라는 제목 아래 '비빔밥은 밥에다 고추장을 소스로 해서 여러 가지 야채와 쇠고기 및 갖가지 고명을 섞어 놓은 요리입니다…'라는 간략한 해설이 적혀 있다. 그리고 전면 큰 그림으로 비빔밥 한 그릇의 컬러 사진이 올려져 있다.

구로다는 일본인 특유의 어법으로 "아름다운 컬러 사진이 한국 신문에 소개되어 주한 일본인 송년회에서 화제가 된 바가 있다"고 마치 칭찬하듯이 슬쩍 얘기를 꺼낸 뒤 "그런데 비빔밥은 볼 때는 좋지만 먹으면 놀란다"며 곧 본의를 드러낸다. 그는 "비빔밥은 숟가락을 손으로 잡고 재료와 밥, 고추장 등을 맹렬하게 섞는다"든지, "한국인은 마구 섞어 먹는다는 느낌"이라든지, "그래서 당초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정체불명의 것을 먹게 된다"든지, 나아가서 "한국의 식습관은 무엇이든 비벼 먹는 것"이라고까지 일반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슬쩍 한쪽으로 비켜나듯이 "아름다운 광고 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갔던 미국인이 그 '양두구육'에 놀라지 않겠느냐"는 걱정까지 해주고 있다. 알다시피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보기만 그럴듯하고 속은 변변하지 않다는 뜻이다. 기사 속에 나타난 구로다의 직접적인 취지는 비빔밥처럼 재료를 뒤섞어 먹는 음식은 세계화에 부적합하다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류의 음식, 혹은 한국 음식 전반에 대한 그의 경멸적 시각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구로다의 기사를 보면서 문득 이전에 읽었던 글 한 대목을 머리에 떠올렸다. '저녁 쟁반은 대단히 정교한 질서를 갖춘 한 폭의 그림 같다. 까만 바탕에 다양한 물건들(밥그릇과 네모난 상자, 젓가락, 소량의 음식, 잿빛 생강 조금, 주황색 야채 몇 가닥, 갈색 간장)이 놓인 하나의 액자이며, 용기들이나 몇 가지 안 되는 음식들이 양은 적지만 수는 아주 많기 때문에…', '동양요리와 젓가락의 조화가 단지 기능과 도구에만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음식물은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게 잘라지며, 또한 젓가락도 음식물이 작게 잘려져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오래 전 해체주의자 롤랑 바르트가 일본을 여행하며 받았던 갖가지 느낌을 독특한 시선으로 옮겨 놓은 한 소책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바르트는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직관력을 발휘하여 일본 음식에 담긴 일종의 형식주의적 미학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 갇힌 채, 일본식 젓가락 문화를 '동양문화'와 동일시한다.

비빔밥에 대한 구로다의 혐오감-그리고 약간은 일본 저녁상에 대한 바르트의 놀라움에서도-에는 단지 비빔밥의 '세계화'라는 실제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훨씬 더 깊은 어떤 문화적 편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뒤섞이는 것, 즉 혼합에 대한 거의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사실 프랑스 요리나 일본 요리나 비빔밥처럼 재료를 완전히 뒤섞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두려움은 아마 혼합이 곧 순수함의 훼손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 같다.

이러한 관념이 가장 강력한 곳이 종교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유대 경전에도 두 가지 다른 음식을 같은 그릇에 담지 말라는,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만한 구절이 나온다. 이 역시 혼합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순혈, 즉 피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파시즘 혹은 민족주의 경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구로다의 기사가 우익 성향의 신문에 실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비빔밥에서 '불결함'을 보는 구로다식 시선은 위험할 수 있다. 순수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언제나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불결한 요소로 배척하고 타자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비빔밥은 '웰빙' 음식이라는 것 이상의 문화적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다양한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참신한 맛을 낸다는 혼종(混種)의 방식이 아닐까. 나는 이래저래 비빔밥이 좋다.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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