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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서점을 애도하며 /이택광

외국에서는 서점 특화하는데 부산은 거꾸로 가니

매력적인 책의 향기 어디에서 맡을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27 20:09:15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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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동보서적에 이어 문우당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치 오랜 벗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낸 나에게 두 서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동보서적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문우당에서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을 펼쳐보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학문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어준 부산의 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부산의 문화를 대표했던 두 곳은 단순한 서점 차원을 넘어서 있다. 책이라는 '특별한 상품'은 판매와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속해 있긴 하지만, 일정하게 그 굴레를 벗어나 있기에, 책을 구매하는 행위는 시장에서 옷 한 벌을 사는 행위와 엄연히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의 철학자 장 뤽 낭시는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라는 작은 책에서 서점의 역할에 대한 짧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서점은 "양념가게나 불고기집, 또는 파이가게"처럼 먹음직한 냄새를 풍기는 장소이다. 맛과 향을 동시에 전달해주는 곳이 서점이라는 말이다.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는 향기를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것이다. 오래된 서점에 들어섰을 때,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는 애서가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낭시의 말처럼, 서점은 독자에게 열린 공간이다. 누구라도 책을 집어 들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열람용으로 진열된 책을 들고 가쁘게 넘겨 보면서 우리는 '구매자'나 '소비자'이기 이전에 '독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먼저 저자들을 살펴보고, 시리즈의 내용을 살펴보고, 출판사를 확인하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서점이 제공하는 일정한 안정감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독자의 심정을 잘 보살피는 친절한 서점은 소파와 탁자를 마련해서 '독자'의 편의를 돕기도 한다.

판매대에 진열된 책들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가지런하게 순서에 맞춰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마치 오랜 세월을 누리면서 축적된 지층처럼 우리를 반긴다.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그 지층을 하나 건져 올리고 펼쳐 들었을 때 밀려드는 느낌은 컴컴한 숲 속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받으며 환하게 떠오르는 공터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책의 매력을 한층 더 높여 주는 처소가 바로 서점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치 중세의 교회처럼, 서점은 책의 이상을 지상으로 강림시키는 제단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책은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각별한 책의 의미 때문에 유서 깊은 유럽의 도시들은 각자 내세울 만한 서점들을 하나씩 갖고 있게 마련이다. 영국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 같은 곳은 아예 마을 전체가 모두 서점인 경우이지만, 보통 번잡한 대도시들도 하나 둘씩 이름 있는 서점들을 모퉁이마다 감춰 두고 있다. '비포선라이즈'라는 영화에 등장해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셰익스피어앤컴퍼니'라는 서점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서점이다. 새 책은 물론 구하기 어려운 중고서적들도 많이 팔고 있는데, 다락방 같은 이 층에 올라가면 판매용이 아니라 소장용으로 열람할 수 있는 귀한 책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며칠씩 묵으면서 집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서점의 매력이다.

영국의 경우도 영화 '노팅힐'에 나온 여행전문서점 같은 곳을 길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영국의 서점들은 전문분야별로 특화된 것이 특징인데, 그 못지않게 특색 있는 서점도 많다. 특히 전통 있는 서평지인 '런던 리뷰 오브 북스'가 열어놓은 서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서점은 세계작가대회 같은 자체 행사를 기획해서 특별한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티타임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격의 없이 다과를 놓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문화가 공론의 방식으로 되살아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서점의 기능을 놓고 봤을 때, 동보서적과 문우당의 폐점은 서점 한둘이 시장에서 문을 닫은 것에 불과한 사건이 아니다. 특색 있었던 기억의 공간들이 부산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와 함께 내 유년과 학창시절의 추억 한 자락도 사라져버렸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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