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단풍 상념(想念) /고기화

온몸 불사르는 비움의 철학

단풍 같은 임 그리워지는 계절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김없이 단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야흐로 온 산하가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절정을 맞은 단풍이 서서히 남하하고 있을 터. 이제 곧 가야산과 가지산, 부산의 금정산도 만산홍엽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가을 내음이 가슴을 설레게 해서일까. 하염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서일까. 엊그저께 아내가 설악산으로 단풍 산행을 갔다 왔다. 무박 2일의 여행. 기자 아내로 살아온 20여 년 만에 처음 가보는 단풍 여행이라며 들뜬 모습에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동행하지 못하고, 늦은 밤 기차역에 나가 배웅과 마중을 한 게 고작이다. 불현듯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렵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심산하다.

붉고 노랗게 단풍이 드는 이유는 뭘까. 가는 계절이 서러워서일까. 그래서 온몸을 불사르며 마지막 작별을 노래하는 건가. 절정기 고운 단풍은 '몰아(沒我)의 경지'라 할 만큼 아름답다. 그 화려한 만큼이나 고난의 시간을 보냈음이리라. 그러나 상식적으로 말하면 단풍은 나뭇잎의 소멸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온 변화에 따른 나뭇잎의 색소 변화이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라는 세포층이 생겨나면서 더 이상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 틈을 타 숨겨져 있던 색소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겨울을 나기 위한 나무의 월동채비인 셈이다. 나뭇잎은 단풍이 들면 곧 낙엽 신세가 되리니 왠지 울고 싶어진다.

곧잘 단풍은 인생의 황혼에 비유되곤 한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듯 황혼의 노을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늙음. 자기의 할 일을 다한 마지막이 아름다운 삶은 긴 감동을 준다. 황혼이 아름다운 건 해 저문 노을을 미소로 품을 수 있고, 삶에 고마움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단풍과 낙엽은 끝은 아니다. 새봄에 다시 돋아날 새싹을 기약하고 있다. 단풍이 진정 아름다운 까닭은 새 생명의 잉태를 예고하기 때문이리라. 새삼 생명에의 외경에 홀로 숙연해진다.

단풍은 무욕이나 빈손, 빈 마음과 동의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미움과 탐욕을 버리고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을 채우는 지혜를 들려준다. 이 계절에 듣는 도종환 시인의 '단풍드는 날'이란 시가 가슴에 딱 와 닿는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일상에 지친 삶일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 비우기에 나선다면 다소나마 행복해지지 않을까. 가득한 욕심과 욕망이 내면을 지배하면 그만큼 삶도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도 있지 않는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미련 없이 자신을 떨치는 단풍은 우리에게 자신을 비우고 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가지라고 깨우치는 듯하다.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썼다는 '홍엽산거(紅葉山居)'란 글귀도 단풍처럼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살리라는 텅 빈 마음이 아니겠는가.

문득 부산국제영화제와의 15년간 인연을 마감하며 표표히 떠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은 '단풍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며 "사랑받으면서 떠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인사를 남긴 그의 뒷모습은 단풍만큼이나 아름답다. 디지털 캠코더 하나 장만해서 직접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거라는 것도, 15년간 일해 온 사무실의 짐이 달랑 작은 여행가방 두 개라는 것도 단풍의 내면을 닮았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곤 하지만, 행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이는 욕심과 욕망이란 바람을 잠재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 욕심을 버려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이럴 때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 내 삶의 자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단풍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깊어가는 이 가을, 주말엔 잠시 시간을 내 동네 산이라도 찾아 고운 빛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건 어떨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영화의전당 앞 도로 지하화 10여년 만에 본격화
  2. 2“소나무 뽑은 구덩이에 ‘아동’ 묻었다” 참상 담은 詩와 수필
  3. 3지구대서 넘어진 만취자 ‘의식불명’
  4. 4면적 조율만 남았다…55보급창 이전 속도
  5. 5도시철도 무임승차 지원 논란, 노인연령·연금 조정으로 번져
  6. 6의대생도 지방 떠나 서울로…부산 3년간 57명 중도탈락
  7. 7엑스포 관람객 UAM 수송…4월 불꽃축제 부산 매력 알린다
  8. 8“초량천 생태, 2단계선 제대로 복원을”
  9. 9“지자체 주민정보 임의열람 관행 없애야”
  10. 10금융위 고위직 지원 없더니…尹캠프 인사 내정됐었나
  1. 1면적 조율만 남았다…55보급창 이전 속도
  2. 2[뉴스 분석] 尹도 安도 총선 공천권 절실…진흙탕 전대 불렀다
  3. 3화물차 안전운임제 폐지·‘번호판 장사’ 퇴출
  4. 4野 ‘이상민 탄핵’ 본회의 보고…대통령실 “어떤 법 위반했나”
  5. 5때릴 때는 언제고? 친윤계 초선의원들, 나경원 찾아 구애
  6. 6한동훈, 이재명 구속수사 여부에 “법 따라 공정히 수사”
  7. 7조경태 “엑스포 유치·가덕신공항 조기 개항에 앞장”
  8. 8화주-운송사 자율 운임계약…화물연대 “운송료 깎일 것” 반대
  9. 9尹 지지율 4주만에 반등 40% 임박..."김성태, 천공 의혹 영향"
  10. 10고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 남편 천창수 씨 교육감 보궐선거 출마 선언
  1. 1엑스포 관람객 UAM 수송…4월 불꽃축제 부산 매력 알린다
  2. 2금융위 고위직 지원 없더니…尹캠프 인사 내정됐었나
  3. 3금감원 “금융사 지배구조 점검…이사회와 면담”
  4. 4매년 90명 인명피해…어선사고 방지대책 절실
  5. 5주가지수- 2023년 2월 6일
  6. 6부산 ‘탄소중립 어벤저스’ 한자리에
  7. 7전기자동차 리콜 급증… 믿고 타기에는 ‘뭔가 찜찜’
  8. 8애플페이 내달 상륙…NFC 갖춘 매장부터
  9. 9부산 '100대 업종' 보니…1년간 예식장 12%↓·펜션 27%↑
  10. 10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가능성에 수산업계 대책 마련 고심
  1. 1영화의전당 앞 도로 지하화 10여년 만에 본격화
  2. 2“소나무 뽑은 구덩이에 ‘아동’ 묻었다” 참상 담은 詩와 수필
  3. 3지구대서 넘어진 만취자 ‘의식불명’
  4. 4도시철도 무임승차 지원 논란, 노인연령·연금 조정으로 번져
  5. 5의대생도 지방 떠나 서울로…부산 3년간 57명 중도탈락
  6. 6“초량천 생태, 2단계선 제대로 복원을”
  7. 7“지자체 주민정보 임의열람 관행 없애야”
  8. 8부산 코로나 안내문자, 7일부터 발송중단
  9. 9法 “조국, 자녀 입시비리 등 여전히 눈감고 반성 안 해”
  10. 10‘진상 규명’ 촉발…본지 단독 기획보도 한국기자상 수상
  1. 1267골 ‘토트넘의 왕’ 해리 케인
  2. 2롯데 ‘좌완 부족’ 고질병, 해법은 김진욱 활용?
  3. 3벤투 후임 감독 첫 상대는 콜롬비아
  4. 45연패 해도 1위…김민재의 나폴리 우승 보인다
  5. 5‘이강철호’ 최지만 OUT, 최지훈 IN
  6. 6임시완, 부산세계탁구선수권 홍보대사 위촉
  7. 7롯데 괌으로 떠났는데…박세웅이 국내에 남은 이유는
  8. 8쇼트트랙 최민정, 올 시즌 월드컵 개인전 첫 ‘금메달’
  9. 9폼 오른 황소, 리버풀 잡고 부상에 발목
  10. 10황의조 FC서울 이적…도약 위한 숨 고르기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연의 법, 인간의 법
낙동강 녹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기고 [전체보기]
‘부산이라 좋다, Busan is good!’인 이유
수산자원, 잘 이용하고 관리해야
기자수첩 [전체보기]
학교 신축 공기지연, 노조 탓만 할 수 있나요?
김해시장, 소통행정 이후가 중요하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국은 여기까지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문화자산을 물려받는다는 것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먼저 온 미래’ 영도에서 2030 부산 해법 찾기
‘부산’이라는 아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도청도설 [전체보기]
총기 난사
마스크 안 벗는 이유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너무나 완벽한 음식 식해
여러분 모두 미식가 되세요!
사설 [전체보기]
도시철도 노인 무임승차, 국비 지원 필요하다
영도에서 ‘부산형 워케이션’ 가능성 확인하자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산진 수상비행장을 아세요?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산업전환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동백꽃을 사랑하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신정과 설날 사이의 단상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다시 블랙리스트
정치인의 언어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근고지영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새해엔 선거개혁 위한 결단 기대한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태원 연가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노엘합창단
절대음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당 김은호의 ‘매란방’
풍곡 성재휴의 ‘배암 나와라’
CEO 칼럼 [전체보기]
초고령 선진국에 걸맞은 변화
자율주행의 위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