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山月(산월)이요 앉으면 海月(해월)이라/ 가만히 눈 감으면 胸中(흉중)에도 明月(명월)있다/ 五六島(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明月 싣고 가더라/ 어이 갈거나 내 어이 갈거나/ 이 쵩風(청풍) 이 明月두고 내어이 갈거나/ 잠이야 아무때 못자랴 밤새도록 보거라’
[고층빌딩과 호텔 숲을 거느린 해운대 밤바다는 고급스런 운치와 아늑한 정취를 동시에 안겨준다. 조선비치호텔에서 바라본 해운대의 야경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길, 송정까지 열다섯 고개가 굽이친다 하여 15곡도(曲道)라 불리던 곳. 저녁달을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라 하여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혔던 곳. 춘원 이광수는 그 정취에 취해 ‘해운대에서’라는 시를 읊었고, 지난 83년 달맞이길에 이 시비가 세워졌다.
☆사포지향의 명소
달맞이길이 열다섯 고개라 하였으니 스무고개로 해운대를 벗겨보자.
한반도의 남단, 해발 634곒의 장산을 중심으로 형성.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온천을 함께 거느린 사포지향(四抱之鄕). 재빠른 사람은 이쯤에서 답이 나올 법하다. 좀더 이어보자.
삼한시대에는 장산국. 신라 51대 진성여왕이 천연두를 고쳤다는 온천이 있는 곳. 조선후기엔 유람하는 빈객을 접대하는 지응소(支應所)라는 기관이 있었을 정도로 나라가 주목했던 명승지.
“…”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
답은 벌써 나왔을 것이다. 부산10경, 대한팔경의 하나.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국제적인 해안 관광지, 관광특구 해운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먼 옛날부터 있었을 ‘해운대’가 비로소 ‘해운대’가 된 것은 최치원이라는 걸물(傑物)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말, 명운이 다한 조국을 등지고 가야산에 들어가던 최치원이 굳이 이곳에 온 것은 해운대란 이름을 짓기 위해서 였을까. 심신을 갈고 닦던 그가 자신의 호를 해운으로 고치고 동백섬 남쪽 끝부분 바위에 ‘해운대(海雲臺)’라 음각하니 비로소 해운대로 거듭난 것이다. ☆최치원이 못본 야경
[달맞이동산에 지난 83년 세워진 춘원 이광수의 시비. 해운대의 옛 정추를 고스란히 되살리는 '해운대에서'가 새겨져 있다.]
최치원이 본 해운대는 낮의 해운대였다.
한번 상상해보자. 높다란 대(臺)에 앉아 바다와 구름, 파도소리를 벗삼아 자연 그대로의 해운대를 즐기는 그의 모습을.
해변과 동떨어져 동백꽃이 소담스레 피어나는 동백섬, 드넓은 백사장, 그리고 동쪽바다를 향해 소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이름한 해안 언덕 달맞이길의 월출. 이 얼마나 멋드러진 광경인가.
신새벽 해운대를 찾는 사람은 최치원이 느꼈을 고즈넉한 해운대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호방한 가슴,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새벽 공기, 동백섬의 솔 기운, 동백꽃의 새침한 자태는 옛 것과 무엇이 다를까.
물론 다를 수도 있겠다. 천년 세월이 지나갔다.
그 사이, 해운대는 많이, 깊이 변했다. 춘천에서 밀려온 모래가 동백섬을 육지와 맞붙게 했고, 달맞이길엔 멋쩍게 아파트와 온갖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매년 줄어드는 백사장을 채우기 위해 전라도에서 모래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더하면 그 변화는 가히 상전벽해다.
해운대 백사장 앞에는 마치 마천루처럼 고층 호텔들이 줄지어 섰고, 백사장 앞 송림이 자라던 땅속에는 대형 수족관이 만들어져 있다.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자연그대로의 해운대는 지금 없다. 그 아쉬움을 오늘의 해운대 야경이 어느 정도 달래주고는 있다. 해운대의 초현대적인 수많은 인공 구조물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야경을 연출한다. 밤에 해운대를 가보시라. 동백섬 앞에서부터 해변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변 나무에는 줄줄이 꽃등이 켜져 있고, 고층빌딩촌의 휘황찬란한 조명들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가보면 ‘딴세상’이 돼 있다.
그 속에 폭탄주에 녹아나는 주당들이 있든, 청춘남녀의 밀어가 있든,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선술집 소주에 인생을 맡긴 가장의 넋두리가 있든, 그 모든 사연이 확 트인 밤바다와 밤이슬에 젖어간다.
☆마음의 안식처
외국인이라고 해서 해운대에 대한 인상이 다르지 않다. 지난 1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 행사를 위해 부산을 찾았던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부 인사들은 해운대 야경을 보고 “뷰티풀, 원더풀”을 연발했다. 이들은 해운대가 유럽에서도 찾기힘든 경관을 갖추고 있다며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신라말 석학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동백섬 남단 바위에 새겨진 '해운대' 석각.]
이 행사를 취재했던 일본 아사히TV 여기자 하루코 오노씨는 “일본에서도 해운대는 잘 알려진 곳”이라며 “직접 와서 접해본 해운대는 거리가 깨끗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친절해 기분이 좋았다”고 촌평했다.
해운대가 고향인 향토사학자 주영택(64)씨는 “지금의 수비 교차로까지 갯바람이 몰려오던 옛날의 해운대를 결코 잊을 수 없다”며 “해운대는 자연을 보며 심신을 달래고 재충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마음의 안식처라야 한다”고 말했다. / 정상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