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년) 4월 부산 앞바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의 조선 침략 선봉군 1만8천7백여명을 실은 700여척의 대선단이 나타났다. 마른 오줌을 찔끔거릴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검은 갑옷의 부산첨사 정발(鄭撥)은 의연히 부산진성 문을 걸어 잠갔다. 1천여명에 불과한 정발의 군대는 불굴의 투지로 최후의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싸웠다. 그리고 모두 장렬히 산화했다.
[사진설명-부산 중구 영주동의 부산민주공원 전경 . 공원 오솔길을 걷다보면 부산사람들의 야인기질 , 저항정신이 느껴진다]
고니시를 따라 조선에 와 1년간 머물렀던 한 스페인인은 본국에 보낸 편지에서 이를 ‘아름다운 전투’로 묘사했다. 전황이 불리함에도 군관민이 하나되어 싸우는 모습이 그렇게 비친 것일까.
당시 동래성을 지키던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도 ‘길을 빌려 달라(정명가도·征明假道)’는 왜군에게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며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다.
처절한 저항의식이다.
400여년 전 핏빛 물든 부산항은 세월에 씻겨 온데간데 없지만, 부산사람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이런 저항의식이 무슨 유전자처럼 흐르고 있다.
세파에 씻기면서 갈무리되어 온 그 저항의식은 일제시대 백산 안희제 선생과 박차정 여사, 동래고보 등 학생들의 항일투쟁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 4·19 혁명, 79년 부마항쟁, 군부통치에 맞서는 민주화 투쟁으로 점화됐다.
부산사람들의 무엇이 불의에 저항하고 바른 것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게 만든 것일까.
소설가 윤정규씨는 요산 김정한 선생의 말을 빌어 ‘동래기질’이라 했다. 부산의 뿌리라고 할 동래지역은 옛부터 벼슬한 사람이 타지역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열린 바다를 보며 부패한 정치에 몸을 담그기 보다 바른 길을 걷겠다는 ‘야인기질’이 몸에 배어 있었던 탓이다.
엄광산 끝자락, 부산 중구 영주동 중앙공원 한켠에 우뚝 세워진 ‘부산민주공원’은 이같은 야인기질의 상징물로 다가선다. 외세의 침탈과 군부독재의 질곡 속에서도 결코 굽힐 수 없었던 부산의 팔팔한 저항정신이 마침내 ‘민주 성지’로 구축된 것이다.
이 공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99년 10월. 격동의 20세기를 넘기면서 항쟁의 기념물을 세웠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공원내 민주항쟁기념관 상설전시실에 비치된 방명록에 적힌 글귀들은 부산의 저항정신이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이곳은 처절한 투쟁의 흔적이다. 민주항쟁을 위한 선배들의 노력을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며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 가슴아픈 역사지만 민주열사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 같다.’
방명록의 이들 글귀는 그 자체가 민주공원이 추구하는 목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멀고도 지난한 여정이었다.
‘억눌린 우리 역사, 터져나온 분노….’ 해마다 시월이면 부산의 대학가나 민주시민단체에서 불려지는 노래, 부마민주항쟁 기념가인 ‘시월에 서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79년 10월 부산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우렁찬 함성…. 수많은 시민 학생들은 메캐한 최루가스를 뚫고 서면과 부산역, 남포동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노도와 같은 부산의 외침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철통같은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사진설명-부산민주공원 릫추모의 공간릮에 마련된 민주열사들의 사진]
부산의 불같은 항쟁의식은 87년 6월 다시 한번 분출됐다. 이름하여 6월 민주항쟁이다. 변방으로 치부되던 부산은 6월 항쟁 이후 이 나라 민주화의 성지로 주목됐다.
부산민주운동사편찬위원회가 지난 98년 펴낸 ‘부산민주운동사’는 부산의 역동적 기질을 ‘욱하고 터뜨리는 불뚝성질’로 표현한다. 이 말에는 부산시민들의 다소 거친 심성과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똘똘 뭉치게 만드는 사회 문화적 힘이 응축돼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송기인 신부는 부산의 저항성의 뿌리를 임란에서 마지막 한사람까지 처절하게 왜적에 대항했던 부산진성의 ‘아름다운 전투’에서 찾는다.
송 신부는 “부산사람들은 반응은 느리지만 결정적일 때는 반드시 힘을 모은다. 지난 84년 33명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발족을 준비하다 결국 30명으로 어렵게 출발했지만 이 협의회가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고 털어놓았다.
부산의 근현대사 갈피갈피에 저항의식이 배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사람 개개인의 가슴에 이런 의식이 올올이 박혀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우리가 옷처럼 걸치고 있지만, 그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민주공원이 자리하고 자리매김될 곳은 바로 이 접점일 듯하다. 불의에 대한 저항과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자리에 민주공원이 있는 것이다.
민주공원 김재규 관장은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 사회,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민주화이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이곳을 찾는 어린 학생들에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민주공원내 정의의 광장에는 ‘민주보루(民主堡壘)’와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란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이 기념비는 민주공원과 부산의 정신이 마침내 닿아야 할 목적지의 이정표일 것이다. / 정상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