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제명의 오션 드림]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제명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 이제명 부산대 교수·수소선박기술센터장
  •  |   입력 : 2026-08-20 19:25:36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15일은 광복 81주년이었다. 매년 광복절이면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상흔과 함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한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평소 광복절 소회에 덧붙여 산업의 흥망성쇠가 국가 위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짚어볼 만도 하다. 최근 일본 정부와 조선업계가 2019년 이후 사실상 맥이 끊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일본 내 건조를 되살리기 위해 한국과 기술 협력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한반도의 처지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는 선박 건조 기술과 자본을 해외에 의존했다. 1971년 현대는 울산조선소 건설을 준비하며 영국 A&P 애플도어, 스콧 리스고와의 기술 협력 계약과 함께 바클레이스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그렇게 첫발을 뗀 한국 조선산업은 반세기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LNG선 설계와 건조 역량을 축적했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뒤쫓던 일본은 지금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부러워하고 있다. 산업사의 대역전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한일 간 순위 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조선소’로 군림한 영국은 189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세계 조선시장을 압도했다. 하지만 전간(戰間)기에 점유율을 잃었고, 1948년부터 1970년 사이에는 생산량마저 절대적으로 감소했다. 생산조직 혁신이 지체되고 노사 간 불신으로 개혁이 좌절된 결과였다. 철옹성 같던 우위도 시대의 전환을 놓치면 무너지는 것이 성쇠무상의 교훈이다.

일본의 LNG 운반선 건조 재개와 부활 노력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섬나라에서 LNG 운반선은 단순한 수출 상품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다. 한국과 일본이 최근 LNG 수급 협력과 원유 수급·비축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로 한 것 역시 중동 정세와 해상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전략적 선택이다. 조선산업이 다시 경제 안보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조선산업이 감당해야 하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서 LNG 다음 세대 경쟁 영역으로 최근 들어 액화수소가 부각되고 있다. 수소는 영하 253도에서 액화하면 부피가 약 800분의 1로 줄어 대량 해상 운송이 가능해진다. 영하 162도 안팎인 LNG보다 기술 난도가 비약적으로 높다. 단열과 증발가스 관리, 극저온 기자재와 하역 안전을 함께 풀어야 하는데 미지의 영역이 너무 많다. 아직 대규모 상업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과거 LNG 시장의 태동기와도 닮아 있다. 이런 액화수소 시장에서 이번에도 일본이 먼저 실증의 문을 열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세계 최초의 액화수소 운반선 ‘스이소 프론티어’를 건조해 2022년 호주에서 생산된 액화수소를 일본으로 운송했다. 이어 2026년 1월에는 4만 ㎥급 운반선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상업 규모 공급망을 향한 교두보를 놓는 행보다. 일본 정부도 수소와 그 유도체의 공급량을 수소 환산 기준으로 2040년 연간 약 1200만 t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등 매우 공격적으로 외연 확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대 수소선박기술센터가 주관하는 국책 컨소시엄은, 국내 조선 3사와 주요 기자재 기업들과 함께 일본 실증선보다 규모도 크고 첨단 사양을 보유한 2000㎥급 액화수소 운반선의 설계·건조·시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8만 ㎥급 전기 추진 액화수소 운반선 설계의 선급 기본승인을 확보했다. 일본이 실증에서 앞섰다면 우리는 대형화와 국산화, 운항 실증까지 묶어서 한번에 추월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미 결론이 난 과거의 승패가 아니라 다음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LNG 운반선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원천 기술에서는 여전히 프랑스 GTT 의존도가 높다. LNG에서 겪고 있는 ‘미완의 자립’을 액화수소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조선소를 중심으로 화물창과 단열재 펌프·밸브·배관 엔진 용접 설계 선급 항만 금융과 해운이 하나의 완성형 생태계를 이루어야 한다.

부산항도 액화수소를 하역하는 통과항 기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래 항만의 경쟁력은 물동량뿐 아니라 항만을 중심으로 뿌리내린 기술과 기업의 수준에 달려 있다. 액화수소의 인수·저장·벙커링은 에너지 수급 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으며, 미래형 첨단 복합에너지항으로 재편될 자산이다.

81년 전 광복절은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날이다. 21세기 주권은 국경선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에너지를 확보하고, 운반할 선박을 만들며, 공급망을 스스로 유지하는 능력은 국가의 자립을 떠받친다. 산업의 역사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LNG에서 이룬 역전은 종착점이 아니라 다음 승부의 출발점이다.

광복 81년, 일본이 한국의 LNG 기술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다음의 산업 주권과 다음의 바다를 생각해야 한다. 액화수소가 중요한 이유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3. 3[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4. 4[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5. 5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6. 6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8. 8‘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9. 9[속보]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가을 제사 공물 봉납
  10. 10"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1. 1[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2. 2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3. 3[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4. 4[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5. 5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6. 6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7. 7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8. 8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9. 9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0. 10李대통령, 부상 소방관·장병 쾌유기원…“천금 준들 아깝겠나”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5. 5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6. 6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7. 7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8. 8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9. 9‘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0. 10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3. 3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4. 4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5. 5‘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6. 6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7. 7"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8. 8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9. 9부천 공장 화재, 금속 세척 작업 중 '유증기 스파크 발화' 추정
  10. 10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