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전재수호가 출범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경험을 바탕으로 ‘해양수도 부산’을 핵심 비전으로 내세웠다. 북극항로 개척, HMM 본사 이전, 해사전문법원 개청, 동남투자공사 설립 등 공약의 축은 대부분 중앙정부의 예산·법제와 맞물려 있다. 시가 신설을 추진하는 ‘북극항로추진본부’ 역시 여러 부처에 흩어진 해양기능을 부산시로 일원화해 정부와 협업하겠다는 구상으로, 성패는 국비 확보와 중앙부처 협조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해양수도 비전의 성패는 국가정책을 얼마나 유치하느냐 보다 실제 공간에서 작동하도록 시가 얼마나 신속히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많은 해양정책이 정부의 인허가를 필요로 하는 바 부산시에 집행되기 위한 지난한 설득과 제도개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주도면밀하지 않으면 부산만의 특혜로 호도되거나 거창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무엇보다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이 북극항로나 해사법원 등의 국가전략과 함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로 확장돼야 한다. 슈퍼요트 1척이 도시에 정박하면 연간 30억~40억 원을 소비하며 관련 산업 일자리 등 엄청난 경제효과가 이어진다. ‘City of Sails(돛의 도시)’를 모토로 한 오클랜드 마리나산업을 국가 해양생태계로 삼고 있는 호주, 지역허브·브랜드 라이센싱을 주도하는 싱가포르의 마리나산업 등 대표적인 해양도시들의 마리나 해양레저 인프라가 지역경제와 사람들의 해양경험에 기여하고 있다.
부산은 인프라가 빈약하거나 갈등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40년 된 시설로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8개 계류장 중 단 1개(24척)만 수용 가능한 상황이다. 북항 마리나는 2022년 250척 규모로 조성됐지만 기존 방파제로는 파도를 막지 못해 새 방파제가 필요했고, 매립 고시가 나지 않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동백섬 마리나 역시 방파제가 없어 2014년 개장 전날 계류시설과 선박파손을 비롯한 매년 태풍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촌마리나는 민원으로 사업계획조차 답보상태며 남천 마리나는 민간 운영업체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결국 부산 마리나 4곳 모두 차질을 빚어 ‘마리나 시설 사실상 0’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해수부는 전국 마리나 이용객을 지난해 160만 명에서 2030년 21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 아래 거점형 마리나항만 조성, 선박 이력관리제, 해외 요트박람회 진출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국가 차원의 시장은 성장하는데 해양수도를 자처하는 부산의 현장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마리나 항만이 국가계획(제2차 마리나항만 기본계획, 2020~2029)에 편입돼 있음에도 부산시가 인허가 절차에 끌려다녔다. 둘째 북항형(공공주도)·통영형(민간주도)·운촌형(민관협력) 등 운영모델이 사업지별로 다른 데다 갈등 조정·투자 유치 전략이 부재했다. 셋째 주민 수용성 확보에 실패하면서 완공된 시설조차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사업지별 갈등이 방치되고, 갈등이 방치되니 이미 투입된 예산과 시설조차 가동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설되는 북극항로추진본부에 해양레저·마리나 기능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대형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시민 체감형 인프라까지 총괄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어 운촌 마리나처럼 마리나 사업의 기본인 방파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부산시가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26년 완공 예정인 부산마리나비즈센터를 거점 삼아 마리나-비즈센터-요트산업을 잇는 클러스터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해양수도 부산은 국가 성장전략과 맞닿은 담대한 비전이다. 그러나 시민이 비전을 신뢰하는 지점은 북극항로나 해사법원 같은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주말에 가족과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일상의 인프라에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거대한 국가전략과 초라한 로컬 인프라 사이의 간극이 방치될수록 해양수도라는 구호는 시민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국가정책의 파고를 부산시가 얼마나 촘촘한 행정력으로 지역 현장에 착지시키느냐가 해양수도 비전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