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의 백미인 ‘논어(論語)’를 처음 읽을 때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모두 20편인 ‘논어’ 첫 편 ‘학이(學而)’편 첫머리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에서 子는 하늘 같은 스승 공자를 지칭하니, 學而가 편명이 됐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방심하다 도(道)에 들어가는 문이고, 덕(德)을 쌓는 기초라는 설명에 압도당했다. 신유학의 주창자 주자(朱子)의 해석이 생생하다. 학(學)의 말 됨은 효(效·본받는 것)다. 습(習)은 새가 날갯짓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새가 날갯짓하는 것처럼 하라.
이어진 ‘비지(備旨)’는 난생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부자(夫子·공자의 극존칭)께서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하는 학문의 온전한 공을 가르쳐 보이는 뜻에 말씀하시길 “사람의 성품이 다 선하되 선함을 밝혀서 그 성품의 처음을 회복하고자 하면 실마리는 배움에 힘입음이 있어야 한다. (…) 조용히 침잠해서 공부하다보면 또한 기쁘게 스스로 터득해서 그 나아감이 저절로 그칠 수 없지 아니한가?”
2500년 전 공자 말씀 ‘논어’에 1500년 뒤 주자가 해설을 붙여 ‘논어집주(論語集註)’를 만들고, 이후 논의를 종합해 명나라 등림(鄧林)이 덧붙인 것이 ‘비지’다. 등림은 중국 백과사전인 ‘영락대전’ 편수에 참여한 대학자다. 성현의 말씀마다 뜻하는 바가 있으므로 그 숨겨진 요지를 갖춰 설명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논어’ 읽고 쓰기를 ‘대학(大學)’ ‘맹자(孟子)’로 이어 ‘중용(中庸)’으로 마무리했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원문과 해석, 그 해석의 해석은 동양 집단지성의 금자탑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 학자들 탁견을 살피는 일을 빼놓을 수 없었다. 그 큰 뜻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이유는 글자 숲을 헤매고 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탓이지 그 말씀이 명료하지 않은 까닭이 아니다. 주자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유학 ‘사서(四書)’를 공부하려면 ‘대학’을 먼저 읽어야 한다며 ‘책따로 나따로’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고 힐난한 그대로인 셈이다.
그래도 ‘사서’ 원전 6권과 이를 필사한 공책 60권이 남았다. 오십견과 고관절 염증, 안과 질환을 겪었으나 ‘시경’ ‘서경’ ‘역경’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이 손짓하는 듯하다. 디지털 시대 ‘마음의 거리두기’라며 필사가 인기라고는 하지만 정작 필사는 학문의 전승이자 자기 수양이다. ‘사서’ 필사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고 다독인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