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은 24절기의 시작인 입춘(立春)이다. 양력 2026년이 벌써 한 달을 훌쩍 지났고, 음력 설날은 보름이 채 안 남았다. 양력 1월 1일이 분초를 다투는 현대 사회에서 ‘여기까지, 지금부터’라는 분기점이라면 설날은 자연 동화와 공동체 유지가 키워드다. ‘새 마음 새 뜻’과 ‘민족 대이동’에 더해 해외 여행으로 상징되는 한 해 시작의 의미는 양력이나 음력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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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도사 자장매가 하나둘 꽃봉오리를 열고 있다. 만개하기엔 아직 시간이 걸리겠으나 입춘을 기다렸다는 듯이 화신을 전하고 있다. 사진은 통도사 홈페이지에 지난달 23일 올라온 자장매 모습. 통도사 홈페이지를 통해 자장매 개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
입춘은 또 다른 새해 기점이어서 각별하다. 자연의 새로운 순환 시작이자 농사 출발점이다. 생명과 생산이 또 한 사이클을 맞는다. ‘입춘대길 만사형통(立春大吉 萬事亨通)’이란 입춘방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다. 그러니 입춘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다. 동지부터 입춘까지 하루 한 송이씩 홍매(紅梅)를 그려 81일 만에 여든 한 송이 홍매를 완성하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가 한 예다. 추위를 없애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입춘은 매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고고하게 피어나는 매화의 속성과 순탄치 않은 세상 풍파 속에서 원칙과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통도사 자장매(慈藏梅) 개화 소식이 그래서 반갑다. 통도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장매 개화 과정을 전한다. 지난달 23일 올라온 사진을 보니 꽃봉오리가 몽글몽글하고, 성마른 꽃봉오리는 벌써 하나둘 열렸다. 통도사 자장매는 홍매화다. 통도사를 세운 자장율사를 기리며 붙인 이름이다.
매화를 유독 아낀 조선 유학자가 퇴계 이황이다. 평소 좋아하던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다. 퇴계는 조선 유학의 높은 봉우리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에서도 그의 지적 이력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 유학의 대가인 야마자키 안사이는 퇴계를 학문적 기초로 삼았고, 중국 청나라 학자 양계초가 ‘세상 사람이 공경한다’고 퇴계를 받들었다.
퇴계가 58세이던 1558년 지은 ‘자성록(自省錄)’은 이맘 때 읽기에 제격이다. 후학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간추려 엮은 책이다.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월천 조사경 등 당대 선비들에게 공자 맹자와 신유학을 일으킨 주자 가르침을 체화해 전한다. 퇴계가 평생 붙들고 공부하며 지키려한 퇴계학의 핵심은 ‘경(敬)’이다. 자기를 수양하는 길이자 앎을 실천하는 통로다.
‘자성록’ 서문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아는 만큼 행동하려는 퇴계의 마음가짐이 오롯하다. “옛 성현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게 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벗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일입니다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미다스북스·2010)
매화가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고, 선비가 새 출발을 맞아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이 바로 입춘 풍경이다. ‘자성록’을 다시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화가 봄이 와서 피는 게 아니라, 봄을 부르기 위해 핀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입춘에 되새겨야 할 일이 분명하다. 양극화와 불평등,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과 성장 잠재력 저하 같은 국내 현안에다 글로벌 복합 위기가 겹친 상황이다. 게다가 AI는 세상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지 짐작조차 어렵게 만든다.
나를 돌아보는 일이 먼저다. 그동안 과정을 점검하고 목표를 설정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어렴풋이 답이 나온다. 퇴계의 반성처럼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면.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금상첨화다. 이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말이 90%인 게 정치라 하나 오가는 말 90%가 상처내고 소금까지 뿌리자고 덤벼드는 판이다. 오는 6월 지방권력을 선택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상대 진영 탓하는 말 대신 ‘내 탓이오’ 하며 풀뿌리 민주주의 살리는 방안을 먼저 내놓아야 마땅하다.
퇴계와 같은 해인 1501년 태어난 남명 조식 또한 매화 사랑이 남달랐다. 재야 학자 남명은 1561년 지리산 천왕봉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경남 산청군에 산천재를 짓고 공부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이 때 심은 매화나무가 ‘남명매’다.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단검인 ‘경의검(敬義劍)’을 늘 몸에 지녔던 남명이다. 삶의 궤적이 다른 두 대학자가 매화를 곁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자성’의 묵직함을 느낀다.
그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깨우치고자 했던 경전 가운데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곱씹는다. “남이 한 번에 능(能)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할지니라.” 부지런히 피고지는 자연의 이치, 성(誠)를 따르려는 사람의 자세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