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7’은 윤석열 전 대통령 수인번호다. 법정에서 내란 우두머리 죄를 다투고 있다.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중죄다. 재판 결과는 예단할 수 없으나 그가 보이는 태도는 기대 이하다. 비겁하고 비루하다. 남 탓만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내 탓이오’가 없다. 자기 잘못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못하거나, 아예 자기 잘못이 뭔가조차 모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12·3 불법 계엄’ 기획자이자 실행자인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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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를 지킨 것은 국민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가 계엄 해제 표결로 이를 막았다. 수많은 국민이 국회 앞에 모여 이 과정을 지켜봤다. 사진은 계엄 선포와 국회 해제 표결로 혼란스러운 밤이 이어진 4일 새벽 국회 앞 모습. 연합뉴스 |
역대 최악 대통령이란 혹평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지난달 28일 한국갤럽이 내놓은 역대 대통령 공과 평가 여론조사다. 이 평가 대상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잘못한 일이 가장 많은 이로 꼽힌 것이다.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라고 대통령으로 뽑아줬더니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즉 내란으로 귀결되는 불법 계엄을 선포하지 않았느냐는 엄중한 여론이다. 그동안 가장 잘못한 일이 많았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뛰어넘었다. 이게 민심이다.
무능(無能)하고 무책임(無責任)하고 무도(無道)하다는 비판 속에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고 불법 계엄이라는 무모(無謀)한 자충수를 두었으니 ‘4무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힌 바 있는 윤 전 대통령이다. 이제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무지(無知)가 포함된 ‘5무 전 대통령’이다. 달빛에 그림자가 비치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변하니 하는 말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 교과서에서 익히 배웠을 이 말을 곱씹는 이유는 제대로 반성해야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이 국가 리스크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로 자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오직 부인의 엄호를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징후가 명확하다. 북한과 종교를 정치 영역에 끌어들이려 했다는 의심도 짙다. 총선과 대선이 정치적 판단이라면 법정 판결은 사법적 판단이다. 둘을 합쳐 역사적 판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그다.
여전히 거리에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을 옹립했던 국민의힘은 이들에 기대어 그와의 절연, 불법 계엄 사과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민생 회복 법치 수호 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장외집회에 주력했다. 이런 정당이 수권 세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더한다. 물론 자체에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를 두고 여당으로부터 내란정당이라는 공격의 빌미가 될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한데 묶어 놓고 중도층으로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전략일 것이라고도 한다. 참 한가하고 편한 생각이다. 당장 2일 불법 계엄 선포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국회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추경호 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된다. 만약 추 의원이 구속되면 국민의힘은 내란정당이라는 질타를 받으며 정당 해산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갈 급박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니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국민의힘을 두고 ‘윤석열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판에 국민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거나 ‘더 망해봐야 한다’는 힐난을 자초한다.
그렇다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잘한다고 100% 지지할 순 없다. 국회 절대 다수당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힘자랑을 이어간다면 이는 오만이다. 국민을 얕잡아 보는 일이다. 그 속내가 이재명 대통령 사법 리스크 해소라는 점을 국민이 다 안다. 민주당도 민생이나 타협 대신 강성 지지층에 올인한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불법 계엄 선포와 관련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고, 어떻게 당을 혁신할지 소상하게 국민에게 사과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도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 사정을 고려해 미래 먹거리와 청년 세대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란 피해자는 국민 전체이고, 국민적 상실감과 국제적 위상 저하, 그리고 경제적 손실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는 바다. 국정을 책임진 이 대통령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이 대통령이니 과거와 분열이 아니라 미래와 통합으로 가야 한다.
지난 1년, 불법 계엄의 혼란을 극복한 원동력은 국민이다. 반듯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해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不貳過·불이과)는 것이다. 과거를 덮고 미래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반성할 때 미래로 가는 길이 보인다. 누구도 그날 밤을 잊지 않았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