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일, 통합돌봄지원법이 시행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45년이면 일본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노인 의료비 증가 속도는 이미 체계를 압박하고 있다. 병원·시설 중심의 돌봄 구조로는 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통합돌봄지원법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탄생한 제도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병원과 시설을 떠돌지 않고, 살던 곳에서 일상과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가적 약속이다.
그러나 시행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지금, 현장의 준비 상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4년 말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를 조사한 결과, 통합돌봄 시범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이해한다고 답한 곳은 15%에 불과했다. 10%는 사업 자체도 몰랐다. 돌봄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해야 할 주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통합돌봄지원법은 돌봄 권한과 책임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한 게 핵심이다. 대상자 발굴, 욕구 조사, 종합판정, 개인별 계획 수립, 서비스 연계 등 대부분의 절차가 지자체 몫이다. 방향은 타당하다. 주민의 생활권 안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읍·면·동 단위에서 복지 요양 의료 주거를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조정하는 일은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현장에서는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 토론회에서도 “전담 공무원 확충 없는 통합돌봄은 종이 제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반복해 나왔다.
의료와 요양의 분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노인의 돌봄 욕구는 의료적 신체적 정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현행 장기요양보험은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를 하나의 수가로 묶어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도 방문간호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실제 1등급 장기요양 대상자의 방문간호 이용률은 3%대에 불과하다. 통합돌봄지원법이 의료·요양 연계를 명시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이 지역돌봄 체계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강력한 제도적 장치는 아직 부족하다.
지역 간 격차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재택의료센터, 통합재가센터, 방문건강 인력 등 필수 인프라가 지자체마다 크게 다르다. 가정전문간호사 역시 전국적으로 6000여 명이 있지만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교육기관은 전국 8곳뿐이고 부산에는 한 곳도 없다.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지역별 역량 차이가 그대로 서비스의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정 역시 통합돌봄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법은 지자체가 ‘지역재정기금’을 만들어 돌봄을 지원하도록 규정하지만, 이미 복지 재정이 빠듯한 지자체가 새로운 부담을 떠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65세 이상 의료비는 6년 만에 1.86배 증가했고, 장기요양보험 급여비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충분한 재정 기반 없이 지자체 중심의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상자 범위 문제도 남아 있다. 현행 법은 노인과 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지역사회 돌봄의 사각지대는 훨씬 넓다. 고립·은둔 청년, 정신질환자, 만성질환 중장년, 가족 돌봄 공백에 놓인 아동 등 다양한 취약계층이 존재한다. 시행을 앞둔 지금 “통합돌봄이라면 돌봄이 필요한 모든 주민을 포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힘을 얻는 이유다. 그리고 의료기관과 지역 돌봄 체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돌봄의 연속성은 결국 제도상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역 기반 의료·요양 연계 모델을 조기에 정착시킬수 있도록 의료 및 복지기관들의 협업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법이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히 옳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지역에서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초고령사회에서 필수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실행력이다.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더라도 이를 움직일 인력·인프라·재정이 갖춰지지 않으면 통합돌봄은 현실이 되기 어렵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시행까지 남은 기간 동안 지자체 역량을 강화하고, 의료-요양 연계 구조를 현실적으로 재설계하며,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돌봄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2026년 3월 27일, 제도가 문을 여는 순간이 곧 현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준비된 실행력’이다. 통합돌봄의 성공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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