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기 감금 고문 살인 등 각종 범죄 연루 혐의로 캄보디아에 체포돼 있던 한국인 64명을 국내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로맨스 스캠, 보이스 피싱, 온라인 도박, 노쇼 사기 등을 벌이다 경찰 단속에 걸린 자들이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속 상태로 한국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구출 대상자가 아니라, 한국에 인도된 범죄 피의자에 불과하다. 취업 알선 약속에 속아 캄보디아로 갔다가 현지에 억류된 진짜 피해자들이 여전히 상당수 존재한다는 게 정설이어서 이들의 소재 파악과 구출이 시급하다.

20일 오후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 취업 사기 사건이 본격 공론화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가담자 혹은 피해자들의 진술, 현지 조사,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실태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조직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며 지금까지 밝혀진 가해·피해·사망자 규모는 그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법무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캄보디아 출국자와 한국 입국자 수의 차이는 지난 2021년 113명에 불과했으나 2022년 3209명, 2023년 2662명, 2024년 3248명 등으로 폭증했다. 인접국을 통해 캄보디아로 들어가거나 밀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인원이 모두 범죄 관련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은 상당하다.

불행히도 현지 검경이나 한국 정부합동대응팀이 감금이나 고문 피해자를 구출했다는 소식은 아직 극소수에 그친다. 캄보디아 주요 범죄 단지는 이미 조직원들이 떠나고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건물에는 범죄자들이 쓰던 집기나 옷가지만 어지럽게 널려 있다고 한다. 시아누크빌 보코산 등 시내에서 버젓이 영업하던 조직들이 사태가 국제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경지대나 해외로 도망간 것이다. 범죄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이나 후이원그룹 수뇌부가 캄보디아 정권의 비호를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범죄 집단과 공권력의 결탁이 의심되지만, 어떤 경위에서든 우리 정부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다.

정부합동대응팀은 캄보디아 정부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한국과 캄보디아 경찰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처리 전담 경찰관) 설치를 논의하는 등 대응에 분주하지만 범죄자의 기민함에는 못 미친다. 국내 소환된 범죄자 조사는 캄보디아 취업 사기 사건의 시작일 뿐이다. 정작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고 구출에 힘써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벌써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캄보디아에 남아 있는 범죄 가담자와 연루자에 대한 조사와 수사에 속도를 더 붙여야 한다. 우선은 미귀국자들의 신원과 소재 파악이 시급하다. 여러 정치적 이유로 캄보디아 정부가 한국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보다 강력한 외교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압박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