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첫날인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조희대 대법원장 증언을 둘러싼 여야의 격렬한 공방으로 시작부터 파열음을 냈다. 대법원장 출석 여부와 질의 가능성을 두고 벌어진 고성은 국정감사의 본질을 흐렸다. 조 대법원장은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이석을 허용하지 않아 2시간 정도 여야 의원의 고성과 의혹 제기를 들어야 했다. 오전 정회 시간에야 자리를 떴다. 국민은 이번에도 국감장에서 국회 품격을 느끼기 힘들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 대표로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조 대법원장은 이날 국감장에 피감기관장 자격으로 출석해 인사말을 낭독했다. 이후 추 위원장의 이석 언급이 없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를 일반증인으로 채택, 계속 앉아 있도록 했다.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판결 과정에서 ‘속전속결 처리’가 있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계속 중인 재판을 두고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맞받았다. 사법부 수장의 국감 증언이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과 충돌하는가 아니면 국회의 정당한 감사권 행사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의 합의 과정을 놓고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법 규정에 맞지 않다”며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사법부 독립성과 재판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로 볼 수 있다. 역대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재판 관련 질의에 답변한 전례가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이를 관례로 치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조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해명할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추 위원장은 “관례라는 이름으로 국회법에 명시된 조항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대선 개입 의혹,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계, 김건희 여사 관련 제보까지 언급하며 국감장은 정치 공방장으로 변질됐다. 민주당은 대법원장 침묵을 ‘책임 회피’로 규정하며 사퇴까지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검은 옷과 근조 리본을 착용하며 사법부 명예가 훼손됐다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 무죄 만들기용 국감”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의 “대법원 대선 개입” 주장은 사법부 판단을 정치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국민의힘의 “사법부 겁박 중단” 외침 역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비친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기관이며, 사법부는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수행하는 독립 기관이다. 두 기관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존중해야 한다. 국정감사는 행정부와 사법부 운영을 점검하는 자리이지, 정치적 의혹을 몰아세우는 장이 아니다. 이날 국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웠고,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초래했다. 국회가 법치주의의 수호자임을 자임한다면 그에 걸맞은 절제와 품격을 지켜야 한다. 사법부 역시 판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마땅하다. 15일 예정된 대법원 현장 검증에서는 이 같은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