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원자력의학원(부산 기장군) 병리과장 등을 지냈고 지금은 KCL 한국임상의학연구소에서 활동하는 김민석 의학박사는 2012년부터 날마다 많은 지인에게 보내는 ‘클래식 음악 메일’(https://open.kakao.com/o/gO94uy1b)로 유명하다. 이 음악 메일에는 간명한 해설과 함께 클래식 음악 파일이 동봉되고, 건강과 의학 관련 최신 지식 동향이 함께 담겨 꿩(음악) 먹고 알(의학·건강 정보) 먹는 재미가 쏠쏠하며 유용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을 안내한 지난 7월 2일 자 음악 메일에는 온천 또는 온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솔깃할 의학 소식이 담겼다. 최근 미국 오리건대학교 바우어만 스포츠과학센터가 진행한 연구 결과라고 한다. 몸이 건강한 성인 남녀 20명(평균 24세)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45분 동안 열에 노출시킨 뒤 신체 변화를 측정했다. 여기서 ‘각기 다른 방식’이란 ▷온탕(Hot Water Immersion, HWI) ▷전통 사우나(Traditional Sauna, TRAD) ▷원적외선 사우나(Far Infrared Sauna, FIR)를 말한다.

그렇게 했더니, 온탕(HWI)이 심부 체온을 가장 효과적으로 높였다. 이는 물이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24배 높아서 온탕 안에 들어가면 열 전달이 더 효율성 높게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속에서는 몸이 땀을 내서 열을 발산하는 방식이 잘 이뤄지지 않으므로 체온 상승 효과는 극대화된다. 심박출량(심장이 1분 동안 내보내는 혈액량)도 온탕에 있을 때 가장 크게 증가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온탕이 체온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신체의 면역 반응이 더 잘 이뤄지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곧장 떠오른 곳이 수천 년 역사를 품은 동래온천(온천장)과 해운대온천이다. 이 연구결과를 한번 잘 들여다보자, 이거다. 연구를 추가하고 보충하는 단계가 필요하겠지만, 결국 온천에 자주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면 ▷체온을 높일 수 있고 ▷혈액순환을 개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몸의 면역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면역 능력이 높아지면, 잔병이나 흔한 질환에는 덜 걸릴 테고 그러면 잔병이 번져 큰 병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부산에는 전철 타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도심에 온천이 떡하니 있다.

요즘 관광·여행·문화 행사장에 가서 인사말이나 발제를 듣다가 아쉬울 때가 많다. 부산을 소개할 때 으레 나오는 천혜의 자원, 자연조건 등을 설명할 때 ‘바다·산·강’에 그칠 때가 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온천을 자꾸 빼먹는다. 이런 순간, 안타깝다. 예전에는 ‘바다·산·강·온천’, 이 넷을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민의 생활편의시설로서 지위는 여전하지만, 여행지·관광지로서는 부산 온천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을 느끼면서 이대로 있지 말고 뭔가 해보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자꾸 든다.

인구 325만 명이 넘는 부산만 한 대도시 도심지에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지는 스토리텔링과 검증된 효능을 간직한 큰 온천이 두 개나 있다는 건 거듭 생각해도 범상하지 않다. 나는 아주 오래전, 당시 신인이던 배우 김혜수 씨가 인터뷰에서 ‘저는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에는 ‘온천동’이라는 지명을 가진 동네가 따로 있다’는 취지로 기자에게 설명하는 대목을 본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온천’이라는 보통명사가 ‘온천동’이라는 고유명사로 존재하는 사연은 다른 지역 사람에게는 우리가 별도로 설명해야 할 독특한 내용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해외여행을 가든, 다른 지역 여행을 가든 온천은 대체로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 해외에서 온 여행객이, 부산에서는 시외버스가 아니라 전철(도시철도) 타고 도심 해수욕장 여러 곳에 곧장 갈 수 있다는 걸 인상 깊게 여긴다는데, 동래온천·해운대온천에도 그런 매력은 내장돼 있지 않을까?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온천장에 가서 온천욕을 하는 생활을 한 지가 15년이 넘어서 온천욕의 효능은 확실히 느끼며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자랑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여행 매력으로 승화하는 방법은 무얼까.

부산의 온천이 여행지·관광지로서 좀 더 활력이 생기기 바란다. 온천이라는 자원과 이 도시의 문화적·창의적 역량을 결합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보는 사이, 여러 행사장에서 ‘온천’은 빼먹은 채 “부산은 바다·산·강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라고 표현하는 인사말과 발제를 듣는 일은 는다. 그럴 땐 ‘아! 온천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다행히 최근 부산의 온천 관련 단체 등에서 온천을 알리는 일에 더 열심히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눈길이 간다.

조봉권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