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낳았던 ‘조국 사태’ 장본인이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되며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아직 형기 30%밖에 채우지 않은 이른 사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불과 1년반 전 윤 전 대통령 설날 사면을 두고 “유죄 확정되자마자 바로 사면하면 사법제도가 왜 필요한가? 유무죄 판단, 형 집행 여부도 그냥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하면 되지.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니다”고 말했었다. 서 있는 위치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다. 야당으로서 원칙 없는 사면을 비판할 수 있고, 집권 후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사면의 이유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검찰의 무리한 기획·표적·탄압 수사 희생양에 대한 구제라 한다. 심지어 죄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백번 양보해 검찰의 과한 수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판결은 일방적일 수가 없다. 변호사의 변론까지 고려해 판사가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 주장처럼 대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하면 사법제도는 왜 필요한가?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하면 되지. 조국의 입시비리를 두고 “기득권층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스펙 만들기다”, 심지어 이철희 전 의원은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라 감쌌지만 많은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

과연 입시 비리가 그렇게 가볍게 치부될 사안인가. 2018년 A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사건. 시험지 빼돌린 학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는 사건 직후 이혼당했다. 얼마전 3년 6개월 형기를 마쳤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해 주유원 알바를 한다고 한다. 자매는 대인기피증으로 자기들 방에서 꼼짝 않고 비극적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말 그대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조국 전 의원도 틈만 나면 멸문지화를 언급했다. 정말 그런가? 조국 부부와 딸까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딸은 의사 면허가 취소되었지만 구독자 42만 명의 셀럽 유튜버가 되었고, 최근 시작한 화장품 사업은 국내 완판에 해외로 진출 할 정도로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조국 자신은 12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조국혁신당을 창당했다. 이번 사면을 통해 ‘검찰 희생양’ 이미지를 업고 차기 대권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멸문지화란 말이 무색한 화려한 복권이다. 진영논리가 사법 심판을 이긴 것이다. ‘시험지 유출’과 ‘표창장 조작’이 똑같으냐 항변할 법하다. 조국 사태를 대부분 ‘공정’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데 ‘상호신뢰’ 측면을 간과한다. 상호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훼손되고 축적되지 않으면 사회는 진일보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진입이 힘들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이 이해충돌이나 공직자 범죄에 엄격한 건 사회적 신뢰 상실이 공화국의 기반을 허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는 첫째, 586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 주축의 40~60 기성세대와 2030 미래세대 간 신뢰를 무너뜨렸다. 계층 사다리를 걷어차인 2030들이 조국 사태 이후 586 주축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환멸, 좌절과 분노로 정권 심판에 앞장선 사실을 되새겨보자. 사회정의를 외치던 586들의 위선, 금수저들 간의 스펙 꿔주기와 그 당사자들이 권력까지 갖는 것을 미래세대는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을까. 이 불신을 누가 조장하고 자초한 것인가. 근거없이 공격해대는 2030의 ‘보수화·우경화’가 그들 잘못인가?

둘째, 조국 사태로 우리 교육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자원빈국 대한민국의 흥망은 교육에서 좌우된다. AI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통합적 사고와 인지능력을 갖춘 다기능인이다. 주입식 지식 교육을 넘어 상상력과 추상력,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줄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교육의 틀과 내용도 바뀌어야 된다. 핵심은 입시제도다. 원래 수시전형은 다양하고 특별한 재능을 다양한 입시 전형을 통해 반영하고자 만든 선진국형 제도다. 하지만 수시전형은 금수저끼리 스펙을 주고 받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렸다. 이게 현실로 확인된 게 조국의 입시 비리다. ‘그들만의 리그’를 확인하며 수시전형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 차라리 정시 100%로 돌아가자는 여론이 빗발쳤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교육 제도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국 사태로 촉발된 갈등으로 공동체의 상호신뢰가 회복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죄와 판결은 부정되고 검찰과 사법 탓으로 돌리는 ‘법치 아노미’ 상황이다. 진영의 대립은 루비콘 강을 건너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정치의 도는 무너졌다. 아울러 공화국을 향한 건전한 논의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안보로만 보이는 검찰개혁 사법개혁이 무슨 소용일까. 대내외적 위기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상호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원칙없는 특별 사면과 복권으로 상호 불신을 조장하고 사회적 자본을 무너뜨려가며 어떻게 미래를 논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