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다. 일상과 부처의 세계 경계다.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히는 일주문이 범어사 조계문(曹溪門)이다. 중앙의 ‘조계문’이란 편액은 석가모니로부터 가섭존자 달마대사 혜능대사의 법맥을 잇는 조계종 사찰임을 나타낸다. 조계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에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 오른쪽에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란 더 큰 편액이 나란히 걸렸다.
선찰대본산은 마음의 근원을 구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을 갖춘 종합 수행도량인 총림(叢林)의 위상이 더해진다.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산의 자랑 범어사 정체성이 이처럼 우뚝하다.
이런 역사와 전통 속에 보태져야 할 숨은 공로가 있다.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억압과 수탈이 사찰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특히 일제는 전통 불교를 억압하며 일본식 불교 이식을 시도했다. 1911년 6월 한국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한 ‘사찰령’ 제정이 대표적이다. 일본 불교 영향이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미쳤던 곳이 부산이었다. 일제는 범어사 가람 배치마저 훼손했다. 스님들이 움직였다. 3·1운동에 참여했고, 독립운동가에게 은신처를 제공했으며,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조선 임진왜란 이후 승장이 승병을 양성하던 사찰인 군막사찰(軍幕寺刹) 전통이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밑거름이다.
여기엔 사찰계(寺刹契)라는 경제적 기반이 있었다. 신앙 공동체인 사찰계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근대불교 운동의 든든한 토대였다. 스님들을 결집하고 교육과 출판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계승했다. 불교 전통을 지키고 자주성과 민족정신을 이어가는 도량, 선찰대본산으로의 승격이 이 무렵 이뤄졌다. 성월 스님의 힘이 컸다. 성월 스님은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를 주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919년 11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발표된 불교계 독립선언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갖고 범어사로 내려와 동래장터를 비롯해 여러 곳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법린·김상헌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박물관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기획전 ‘광복의 시간, 그날을 걷다-부산의 독립운동과 범어사’를 보고 다시 찾은 범어사 조계문 편액의 의미가 새삼스러웠다. 이 전시는 광복절인 15일 끝난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