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어 필리아(Philia)는 사랑하는 서로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혼자서만 하는 짝사랑 외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처럼 한쪽만의 마음 만으로는 필리아가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필리아는 부부나 사제지간은 물론 선·후배 사이, 또는 동포애를 포괄한다. 순간적 감정인 파토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격적인 친밀성을 전제로 한다(‘니코마코스 윤리학’,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옮김, 도서출판 길, 2011년 제1판). 필리아는 이처럼 포괄적이기 때문에 우정 우애보다는 친애(親愛)로 옮겨진다. 필리아는 당연히 우정 우애보다는 더 큰 개념이다.

얼마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 노조가 ‘부산 사랑’을 말했다. 1996년 8월 해수부 창립 이래 해수부 공무원들이 부산 사랑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해수부 부산 이전과 관련해 국회 앞 단식 농성을 진행했던 국가공무원노조 윤병철 해수부 지부장이 단식을 멈추고 지난 21일 부산을 찾아 부산시의회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조는 해수부 부산 이전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실효성 있는 준비와 실행 계획을 위해 단식을 했던 것”이라며 “해수부 공무원은 누구보다 부산을 사랑한다. 이제 해수부는 부산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마음을 믿는다.

윤 지부장이 말한 ‘사랑’은 고대 그리스인이 분류한 사랑(에로스·아가페·필리아) 가운데 필리아에 해당하는 것 같다. 쌍방(해수부와 부산 사회)이 인격적으로 친밀함을 갖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부산은 해수부 창립을 주도했고 폐지에 강력 반대했으며 재출범에 앞장서는 등 ‘해수부 사랑’에 거침이 없었다. 그 사랑에 해수부 노조가 화답한 셈이다.

부산 시대를 맞을 해수부와 부산의 관계는 필리아처럼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 상생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해수부가 세종시를 떠나 부산으로 이전해도 예전보다 더 강력한 기능을 갖게 되고, 그 결과 부산이 한단계 더 도약하며 나아가 대한민국을 해양강국으로 도약시키는 디딤돌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해수부와 부산의 상생 발전이다. 부산 사회에서 당장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부분은 조선·해양플랜트와 해상 풍력 업무의 해수부 이관, 해수부 공무원의 정주여건 지원이다. 받기만 하는 것은 ‘필리아’가 될 수 없다.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