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기억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10여 시간의 산고 끝에 간호사는 아주 작은 아이를 내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딸입니다. 확인하세요.” 확인할 여유가 어디 있는가. 나는 그저 그 작은 아이가 신기했고 내 검지손가락에 아이의 손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가야 네가 내 딸이구나 내 딸이야. 내가 네 엄마란다. 엄마.

결혼하면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내도 엄마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은 결혼예비학교, 부모교육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지만 30년 전만 해도 이런 프로그램은커녕 부모님조차 어떻게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고향과 부모를 떠나 몇 고비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비바람을 맞은 후에야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밥을 잘 안 먹을 때, 숙제를 안 했을 때, 게임을 많이 할 때, 특히 사춘기를 지날 때는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울화통이 터져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엄마입니다 나는 엄마입니다’를 되뇌었다. 물론 아이들도 마음고생을 했을거다. 특히 첫째 아이는 초보 엄마의 무지로 여러 해프닝을 겪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이름표를 예쁘게 꾸며 코팅해오라는 안내장을 받고 색연필과 색종이로 열심히 만들었는데 코팅을 어떻게 하지? 오래전 학교 다닐 때 비닐두장을 붙여 천을 대고 다린 기억이 났다. 남편의 새 와이셔츠 포장비닐을 벗겨서 다림질을 해 만든 이름표를 아이의 가슴에 달고 뿌듯하게 교실에 들어갔는데 웬걸 우리 아이 이름표만 쭈굴쭈굴, 다른 아이들의 이름표는 어쩜 그리 빳빳하고 매끄럽게 만들었는지 옆에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렇게 잘 만드셨어요?” “문방구에서 코팅지를 팔아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세상의 뉴스는 다 알고 전하는 아나운서가 집 앞 문방구 소식은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한편 워킹맘으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저녁의 회식이나 약속은 거의 하지 않았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교육도 상담도 받았지만 가끔 자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는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한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았을 때는 눈앞이 노랬다.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병원에서 쪽잠을 자면서 낮에는 아이를 위로하며 웃었지만 밤에는 숨죽여 울며 기도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행히 딸아이는 흉터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건강한 사회인으로 잘 지내고 있어 고맙고 기특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마음의 생채기에는 굳은살이 생기면서 엄마가 되어갔다.

지난달 아들이 한의원을 개원했다. 서산 울산 포항 등 전국으로 임장을 다니고 부산으로 결정한 후에도 임대차계약에 산더미 같은 서류, 소방점검, 의료기기 구입, 직원 면접, 간판 등 많은 일을 하는 아들을 보니 안쓰러웠다. 첫 개원인 만큼 “아들아 너는 의료 쪽을 준비하거라 엄마가 의료 외의 일을 알아볼 테니” 하며 시작된 개원 공동 프로젝트. 나도 석 달 가까이 밤을 새우며 준비를 도왔다. 퇴직 후 단조롭던 생활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진 느낌이었다. 아들도 나도 처음 해보는 개원 준비에 또다시 주문처럼 외웠다 “나는 엄마입니다 나는 엄마입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아들을 격려하고 응원만 하고 싶지만 60 평생 경험의 눈으로 볼 때 저건 아닌데 이리로 가야 하는데 의견 차이가 생길 때는 여전히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엄마인 나도 그를 독립된 사회인으로 보아야 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친밀한 타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가 행복하면 더 행복해지고 힘들어하면 더 힘들어지는 존재 엄마니까 말이다. 지쳐 쓰러져 있다가도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엄마! 엄마도 그랬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웃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