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12·3 비상계엄’은 느닷없이 찾아왔고, 나라를 대혼돈으로 몰아넣었다. 헌법재판소는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하지만 계엄 여파는 아직 진행 중이다. 후보도 국민도 역대 두번째로 맞은 탄핵 대선의 소용돌이로 떼밀렸다. 대선 공약은 파편적이고 겉돈다. 미국발 세계 질서 재편 속 길을 찾을 나침반도 보이지 않는다. 대선 이후 대한민국의 항로는 극히 불투명하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계엄 후유증 극복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언제 마무리될지도 알 수 없다.
계엄이 가져온 혼돈의 시기, 부산 미래도 ‘안갯속’이다. 후보들이 그리는 부산 모습은 전혀 다르다. 제대로 된 방향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마다 논쟁에 휩싸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해양수도 부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산업은행 이전을 중심으로 ‘금융’을 부각했던 윤석열 정부와의 차별화다. 그러면서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 부산 이전, 해사법원 부산 설치를 약속했다. 대신 산은 이전은 “일방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고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해양수도 부산은 ‘윤석열표 공약’을 지우기 위한 반대 급부다. 배경이 어떻든 오랜 숙원임은 분명하다.
이 후보는 27일 SNS를 통해 해양수도 공약 이행을 거듭 강조했다. 일각의 ‘미덥지 못하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해양수산부 이전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다. HMM 본사 이전도 선언적 수준이다. 이 후보는 정부가 이 회사에 70%가 넘는 지분을 가진 만큼 부산 이전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간 회사를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이유로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최대 국적 해운사 본사가 제1 항만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과는 다른 문제다. HMM 양대 노조 중 다수를 차지하는 육상노조의 반대는 또 다른 숙제다. HMM 육상노조 측은 “노조 차원에서 본사 이전에 논의한 바도 없고, 어떤 경우에도 반대한다”고 했다. 해사법원 부산 설치는 ‘부산·인천 이원화’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도 저도 아닌 형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윤석열 정권의 공약을 답습했다.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지난 13일 공식 선거운동 후 첫 부산 일정으로 남구 문현 금융 단지를 찾았다. 산은 이전에 대한 의지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민주당 반대를 돌파할 전략은 없다. “민주당에 요청하겠다”. 산은 이전 해법을 묻는 언론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여권이던 당의 대선 후보 답변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다음 정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하는 1당이다. 최소 3년간 이 지위는 유지된다. 요청만으로 산은 본사 이전이 전격적으로 풀릴까. 수년간 계속된 소모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금융’을 부산 비전으로 제시했다. 증권사를 부산 금융중심지에 집적하겠다는 얘기다. 방법은 증권거래세 감세다. 세금을 낮춰 증권사 본사 부산 이전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중심지 지정 16년이 지났다. 서울 여의도에서 꿈쩍 안 하는 증권사들이 이 정도 유인책에 부산에 몰려들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는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경제 논리에 따라 기업이 옮겨갈 이점을 먼저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했다. 산은과 해양수산부, HMM 등 기관과 기업의 지역 이전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2029년 12월 가덕도신공항을 개항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도 커진다. 모든 후보들이 적기 개항에 한 목소리를 내지만,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부산경실련은 이번 대선 후보들의 부산 공약에 대해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인 방안의 부재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주일 뒤 새 정부가 들어선다. 아직은 부산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물음표만 가득하다. 대선 후 이어지는 지방선거가 또 약속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선명한 부산 미래’가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박태우 서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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