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은 우리의 삶과도 매우 닮은 점이 많은 장기다. 간은 질환이 없으면, 3분의 1이나 4분의 1만 있어도 기능을 유지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그만큼 여력(餘力)을 가지고 있고 재생능력이 왕성한 장기라는 의미다.

1994년쯤 당시 30대 후반인 S 씨가 만성 B형 간염과 간의 우엽에 생긴 약 4㎝ 크기의 간암으로 진료실을 방문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간암으로 진단받고 두세 달 만에 돌아가셨다 했다. 영상의학과에 협진을 요청해 중재적 시술로 암 세포를 줄이는데 주력했다. 간 동맥을 통한 항암 화학 색전술을 시행해 암 크기를 거의 반으로 줄인 다음, 간 우엽 부분 암을 제거했다. 수술 4년 뒤 간의 좌엽에 0.7㎝ 정도의 새로운 암이 확인돼 극초단파를 이용한 소작법으로 치료, 현재까지 30여 년 동안 재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S 씨처럼 가계 내 여러 사람이 간암에 걸리는 경우는 흔하나 요즘은 간염백신이 개발돼 있는 데다, 치료제까지 있어 대를 잇는 가계의 불행은 미연에 막을 수 있다. 또 무엇보다 탁월한 재생능력과 여력을 지닌 간의 특성 덕분에 외과적인 수술치료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적갈색을 띤 간은 인체 내에서 복부의 횡경막 아래에 위치해 있고, 생존에 필수적인 장기다. 신생아 체중의 약 20분의1, 성인은 약 50분의1로 대략 1500g 무게로,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기능을 가진 장기로 꼽힌다. 재생능력이 매우 왕성하고 대사 요구의 증가에도 잘 견디는 여력을 갖고 있다.

이런 간의 재생능력에 대해 인간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대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간 재생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 역사는 대단히 오래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의 비밀을 훔친 대가로 수천 년간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지내야 했다. 매일 독수리가 날아와 낮이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었으나, 신기하게도 밤을 지새운 다음날이면 그의 간이 다시 재생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간의 재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을 것이고, 오늘날 간 질환의 치료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게 틀림없다.

간의 기능을 살펴보면 내분비 기능과 외분비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은 십이지장 내로 들어가 음식물 중 지방 소화에 큰 역할을 한다. 또 간은 위 장관에서 소화되어 흡수되는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과 약간의 지질을 저장하며, 일부는 간세포에서 이용되고 나머지는 혈액을 통해 우리 인체에 활용된다. 그리고 간은 신체의 대사 요구에 반응하여 알부민, 기타 혈장 단백, 글루코스, 지방산, 콜레스테롤, 인지질 등의 많은 물질을 합성하는 한편 또 다른 화합물들인 스테로이드와 대부분의 호르몬을 비활성화하거나, 대사 혹은 해독시킨다.

간은 혈류량이 많아 혈액의 주요 저장소 역할도 하고, 태아 시기나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엔 조혈 기능도 수행한다. 간은 탐식세포가 풍부해서 이물질, 특히 장에서 나오는 세균을 여과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다. 이처럼 생명 유지에 중요하고, 많은 역할을 하는 간은 침묵의 장기이다. 이 때문에 암 등 간 질환이 발견됐을 때엔 이미 상당히 병증이 진행된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간의 질환을 진단하려면 무엇보다 정기적 검진이 매우 중요하다.

인체 내 대부분의 장기는 여력을 가지고 있다. 간 이외에도 뇌 신장 췌장 폐 등의 중요한 장기가 그렇다. 그 이유는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이 세상을 살면서 겪어야 할 여러 고초를 극복할 수 있게 배려한 게 아닌지 추측된다. 혈액 응고, 창상의 치유, 조혈 기능, 피부세포와 소화관 내의 상피세포의 지속적인 신생(新生) 등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특히 간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의 몇 배의 여분을 가지고, 왕성한 재생 능력까지 갖게 된 이유 또한 조물주의 배려 아닐까.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자포자기하기에 앞서, 우리 인체 내의 간처럼 우리 국민은 큰 여력과 재생능력이 있으므로 반드시 재생을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