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석자 ○○○밖에 몰라요. 절에 가면 뒤에 앉아 책장만 뒤적였는데 이제는 법문을 따라 읽어요. 혼자서는 버스를 타고 병원도 못 갔는데 생년월일도 주소도 내 손으로 적지요. 자식들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까막눈이었던 나는 지난 아들 생일에 편지를 써 주었어요.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바라봤는데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어요.”
지난해 ‘문해, 온 세상이 온다’는 주제로 열린 제11회 부산시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부산시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년 동안 문해교육 프로그램 이수를 통해 한글을 깨치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성인 학습자의 작품이다. 시화전과 함께 열린 시상식은 상을 받는 사람도, 상을 주는 사람도, 그리고 상 받는 사람의 가족도 그동안 쏟아 부은 시간과 애씀, 그리고 간절함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평생교육법에 의해 국가는 문해교육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진흥을 위해 17개 시·도에 문해교육센터를 지정·운영하고 있다. 20세 이상 전체 인구 중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중학 학력 미만의 성인인구는 2020년 기준 약 408만 명에, 부산은 28만5000명(10.2%)으로 전국 평균 9.8%보다 높은 실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AI 기반 디지털 시대가 펼쳐지며 챗GPT가 교육 패러다임까지 변화시키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문해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면 국가와 지자체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문해교육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 찾아가는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문해교원의 수업 역량 강화를 통해 프로그램의 질을 제고하려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그리고 성인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따른 새로운 니즈에 부합하도록 문해교육의 범위를 디지털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생활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런 흐름에 대응해 교육부는 올해부터 일상 속 가정·여가·공공·경제활동에 필요한 역량 함양을 위한 생활문해교육을 신규 지원할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아울러 교육의 효과 확대를 위한 예산 확보도 중요하다. 문해교육을 포함해 평생교육 학습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높은 만족도는 그만큼 세금이 바람직하게 쓰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시민이 만족하는 분야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평생교육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국 17개 시·도평생교육진흥원의 2024년 사업비를 비교할 때, 1인당 평생교육 사업비는 전국 평균이 1147원이고 특별·광역시 평균은 1346원이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산의 평생교육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대 편성해서 시민의 평생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 시민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평생학습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생애주기별 평생학습 기회를 보장받도록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평생학습도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외국인 유학생, 다문화가족,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글로벌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세계시민평생학습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언어를 포함해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생활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해 외국인들이 부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정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심각한 인구절벽 위기에 처해있는 부산에 인구유입을 유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 평생학습이 좋아요’는 부산시 평생교육 슬로건처럼 부산시민이 좋은 평생학습 기회와 환경을 함께 누리면서 희망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경험하는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작가·전문가에 의해 하루에도 수십 권의 신간이 발간되고 있는 오늘, 문해 터득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에 막 눈을 뜨고 온 세상을 맞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작품들을 꽃 피는 이 봄에 일독해 보길 권한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설렘과 눈물이 담긴 인생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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